[규제개혁 신문고] 널뛰는 행정에 건설사 170억 적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자체에 그저 넘겨줘야 (寄附採納) 할 땅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더군요. 달라는 대로 주고나니 아파트 사업은 1백70억원 적자로 끝났습니다. " 주택건설업체인 A건설 관계자들에겐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공허하게 들린다.

예측할 수 없는 개발계획으로 많은 손해를 본 데다 공공시설 건립 지연의 부담도 고스란히 떠안았기 때문이다.

A사가 일반주거용지였던 김포군 검단면 일대의 토지 2만2천여평을 사들인 것은 지난 93년. 인천과 서울의 중간지점이어서 아파트를 지어 팔면 돈벌이가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김포군의 도시계획에 맞춰 부지의 20% 정도만 도로와 공공용지 등으로 기부채납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창 사업계획을 짜던 95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은 인천시 서구로 편입됐고, 같은해 11월엔 체계적 도시개발을 위한 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됐다.

A사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 손해본 셈이었다. 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되면 기부채납하는 면적이 최고 50%까지 크게 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이미 사놓은 땅을 그대로 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심끝에 A사는 지난 95년말 2만2천여평 가운데 1만6천여평에 1천3백여가구의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인천시 검단지구사업소와 서구청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승인조건이 퍽 까다로웠다. '도로와 공원용지, 학교용지 등으로 5천여평을 내놓되 추후 변동이 있을 때 회사측에서 추가부담한다는 확약서를 공증제출하라' 는 것.

구획정리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도로와 공공부지 등으로 빠져나가는 면적의 비율 (총사업면적에서 기부채납 땅이 차지하는 비율 : 減步率) 을 27% 선에서 적용한 결과 5천여평이 나왔다는 설명과 함께.

정확한 기부채납 규모는 최소 2년이 걸리는 용역 결과가 나온 뒤에야 확정되겠지만 당장 아파트를 분양해야하는 터라 사업소측이 제시한 비율에 따라 원가를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검토 결과 사업부지가 아닌 6천평 중 5천평을 내놓는다고 해도 최소 20억원의 흑자는 낼 수 있다고 판단한 A사는 96년 4월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가 끝난 98년 11월 준공검사를 받으려던 A사는 날벼락 통보를 받았다.

'기부채납 비율이 39.3%로 상향됐으니 1만여평을 내놓아야 한다' 는 것. 사업승인 당시에는 김포군에서 세운 도시계획을 근거로 이 비율을 추정했지만 인천시로 편입된 뒤 하수처리장 등 새 시설이 필요하고, 도로폭도 늘려야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A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땅은 물론 인근 땅 4천3백여평을 92억원에 추가로 사들여 서구청에 내기로 하고서야 준공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끝에 이 아파트 단지를 분양한 결과 1백70억원의 적자를 보고 말았다.

예상보다 2배나 늘어난 기부채납 토지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떠안은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약속대로 학교부지를 기부채납했지만 교육청이 예산부족으로 학교 건립을 미루자 그 덤터기가 고스란히 A사에 돌아왔다.

'약속과 달리 학교도 없는 아파트를 분양했다' 는 주민들의 민원에 밀려 버스 두대를 전세내 인근 학교까지의 통학용으로 제공해야 했던 것. 최근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아예 소형버스 두대를 구입해 기증하라고 요구해와 난감하다.

이 회사 관계자의 하소연. "1만6천평짜리 아파트 단지 하나를 지으면서 1만여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나라에서 무슨 사업을 하겠습니까. " 기부채납이라는 준조세 (準租稅)가 기업활동을 옥죄는 대표적 사례다.

기획취재팀 = 나현철.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