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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빗나간 신창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진정 사명감이 있는 기자라면 발로 뛰어 취재를 하고 양쪽의 말을 종합해 진실과 거짓을 가려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신창원은 마치 자신이 잡힌 뒤의 언론보도를 예상이라도 한 듯이 이렇게 타이르고 있다.

범법자의 말이지만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낯 뜨거움을 느낀다.

신창원에 관한 신문.방송의 보도태도는 정말 병주고 약주는 식이었다.

신창원 스스로가 영웅행세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나는 의적도 홍길동도 아니다…나를 의적.영웅시하는 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들을 가치나 자격도 없다" 고 일기에 쓰고 있다.

처음에 신창원이 의적이나 영웅쯤으로 비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러더니 2, 3일 전부터는 누구의 부탁이라도 있었는지 약속이나 한 듯 방송과 신문이 '신창원 죽이기' '신창원 깎아내리기' 에 나섰다.

신창원은 흉악범이라는 것이다.

언제 누가 신창원이 흉악범이 아니라고 했던가.

PC통신에 신창원을 동정하고 영웅시하는 글이 계속해 올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정론을 비판, 반박하는 글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그저 6대4나 7대3 정도로 동정론이 우세할 뿐이다.

신창원은 분명히 흉악범이다.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탈옥했으며 탈옥 후에도 1백건에 가까운 강.절도 행위를 벌였다.

그러나 신창원 문제를 다루는 초점을 그가 흉악범이냐, 아니냐에 둬서는 안될 것이다.

신창원에서 대리만족을 얻고 불만을 투사 (投射)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도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신창원 신드롬에서 우리들이 주목하고 논란을 벌여야 할 것은 왜 그런 신드롬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밀쳐놓고 흉악범인 신창원을 왜 영웅시하느냐는 둥, 신창원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건 잘못이라는 둥의 피상적인 논의나 하고 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덮고 피해버리려는 기득권적 태도다.

신창원은 자신이 쓴 글의 진위 (眞僞) 를 가려달라고 했다.

"내가 죽고 난 후라도 좋다" 고 했다.

범법자의 말이라고 흘려 보낼 일은 아니다.

'유전무죄' 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은 인질극을 벌이다가 최후를 마친 흉악범이었다.

흉악범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긴 하지만 '유전무죄' 의 법현실을 전적으로 부정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신창원은 일기에서 교도행정의 억압적이고 반인권적인 측면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고발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이 교도소가 너무 폐쇄돼 있고 재소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창구가 없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해 출소한 '대도 조세형' 이 지적한 교도행정의 문제점과 똑같다.

조씨는 "닫힌 공간은 힘 가진 자의 편의대로 운영되기 십상" 이기 때문에 인권유린 행위가 벌어지기 쉽고, 따라서 "사회로부터 늘 검증받을 수 있도록 공개돼야 한다" 고 주장한 바 있다.

신창원은 또 자신의 성장기를 설명하면서 범죄의 씨앗이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부족한 결손가정에서 싹트며 엄벌주의와 낙인찍기식의 범죄대응이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만든다고 증언했다.

이는 사회학이나 범죄이론에서 학문적으로 입증된 내용이다.

중학2년 중퇴인 그이지만 절실한 직.간접 체험을 통해 전문가나 학자 이상으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범죄자들의 증언이나 고발은 그들이 범죄자라는 이유로 깡그리 부정되고 무시돼 왔다.

그런 결과는 어떤가.

유전무죄의 현실은 여전하고 결손가정에 대한 사회적 보호나 관심은 교과서상의 당위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교도행정에 관해서는 심지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나도 감옥에 있어 봤는데…" 라며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지만 개선됐다는 소식은 과문한 탓인지 풍문으로나마 들어보지 못했다.

아파트 도시가스 배관에 가시철망을 치거나 덮개를 덮고, 방범회사에 의뢰해 감시장치를 하는 게 제2, 제3의 신창원을 막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다.

범죄자는 사회에 대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이 사회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삶을 희생한 끝에 내뱉은 절규라면 그 속에 일말의 진실성이 깃들여 있을 수 있다.

귀를 넓게 열어야 한다.

범죄자의 말이라도 들을 것은 들어야 한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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