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처리 정부 의도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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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대우그룹 처리 방안은 정부가 재벌개혁의 종착역으로 잡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작업의 강도.방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간 정부가 강조해온 재벌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타깃은 오너의 경영권 독점과 선단 (船團) 식 그룹구조를 깨자는 것이다. 이번 대우그룹 처리방식은 이 두가지 목표에 정부가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단기적으로 김우중 회장은 경영을 계속 맡기는 하겠지만 이는 채권단 감시하의 '위탁경영'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우가 자산 매각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채권단은 언제라도 담보로 잡은 金회장.계열사 주식을 처분해도 좋다는 각서를 받기로 한 만큼 金회장의 행동은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2년 후 대우자동차가 정상화되면 金회장이 담보로 내놓았던 주식을 다시 회수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金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해 소유와 경영은 분리된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무역.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대우 계열사는 매각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채권단 주도로 계열분리 작업이 추진된다. 자동차 경영정상화 시한으로 제시된 2년 후에는 대우증권.대우중공업.대우의 건설사업부문 등 계열사가 제3자에 매각되든지 독립기업으로 대우에서 분리돼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이날 "대우 계열사의 매각 추진과 아울러 계열사의 분리를 추진, 독립 법인화한다는 대목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며 "무역과 자동차를 제외한 대우 계열사는 곧바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될 것" 이라고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李위원장은 이같은 대우그룹의 2년 후 모습이 "앞으로 재벌개혁의 모델이 될 것" 이라고까지 했다. 이는 결국 정상화 작업이 진행되고나면 현재의 선단식 대우그룹은 사실상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는 계열사도 상호 지급보증의 고리가 모두 끊어져 재벌구조가 '독립된 기업의 느슨한 연합체' 로 바뀌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우그룹 모델' 이 다른 재벌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다른 그룹들의 형편이 대우와 판이하게 다른데다 부채비율 축소와 주력업종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 등의 재무구조 개선 약속을 지켜나가는 한 정부가 강제로 총수의 사재 출연이나 나아가 퇴진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대우그룹을 모델로 오너의 경영권 독점 견제장치를 지금보다 강화시킬 것은 분명하며, 그 과정에서 재벌.정부간 긴장도 고조될 전망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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