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서봉수-조훈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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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인생 터득한듯 40대에 다시 빛나는 기량

총보 (1~141) = "바둑의 완숙기는 40대" 라고 한다. 이 말에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인생에 대한 터득이 없이는 고수가 될 수 없다는 바둑계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사카타 에이오 (坂田榮男) 9단은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40대 초반에 절정의 기량을 보이며 일본 바둑을 석권했다. 그가 64년에 세운 93.8%라는 세계 최고승률도 40대에 작성한 것이었다.

요즘엔 그러나 바둑의 완숙기는 40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이창호9단의 등장 이후 인생과 아무 상관없을 듯 싶은 10대 고수들이 바둑계를 휩쓰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정신적으로 특이하게 조숙한 모습을 보여온 이창호9단 말고는 10대에 타이틀을 쟁취한 기사는 거의 없다. 그 옛날 서봉수9단이 19세 때 명인이 된 것 말고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조훈현9단은 이창호를 꺾고 춘란배 세계대회에서 우승컵을 차지했다. 53년생이니까 만46세 때 세계정상에 선 셈이다.

曺9단이 국내에서 李9단에게 타이틀을 다 잃고 밖으로 나가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이룬 것은 41세 때였다. 이런 저런 기록을 보면 曺9단의 경우 40대를 전성기라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시들지 않은 기량을 발휘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曺9단은 죽어라 공부만 하는 체질과는 거리가 멀다. 70~80년대만 해도 그는 도전기를 앞두고 밤을 새운 일이 허다했다. 그런 무리에도 불구하고 曺9단은 40대 후반인 지금도 꺾일 줄 모른다. 그의 전류처럼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하나의 의문을 갖고 있다. "이창호 스타일과 조훈현 스타일이 최전성기에 맞싸운다면 어느쪽이 이길까. " 이 판의 승리로 曺9단은 3연승을 거뒀다. 141수 끝, 흑 불계승.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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