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어느 중국 교수의 G2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중국인 친구가 세미나 참석차 서울에 왔다. 삼겹살 집에서 저녁 대접을 했다. 소주잔을 받아 든 그가 뜬금없이 누나 얘기를 꺼낸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누나는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누나는 월급 600위안(약 10만원)을 받아 400위안을 집으로 보냈고, 나는 그 돈으로 대학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이맘때 수많은 나의 ‘누나’들은 세계 경제위기를 부른 ‘주범’으로 몰렸다. 누나가 만든 저가 제품이 미국에 수출됐고, 이는 저물가·저금리를 가능케 해 결국 미국의 버블을 낳았다는 논리였다. 누나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죄밖에 없다. 누가 누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국제무역·투자를 가르치고 있는 친구는 글로벌 불균형(imbalance)을 얘기하고 있었다. ‘중국의 지나친 저축과 수출이 세계 경제 불균형의 한 원인이었던 것은 분명하지 않으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은 미국인”이라고 답했다. 돈을 꿔 펑펑 쓰다가 파산하고는 돈 빌려 준 사람에게 ‘왜 나에게 돈을 빌려 줬느냐?’고 따지는 꼴이라는 얘기다.

친구는 이번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로 화제를 돌렸다.

“주요 결론 중 하나가 미국이 제기한 ‘균형 회복(Rebalancing)’이다. 말이 좋아 균형 회복이지, 실제로는 중국의 수출을 줄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국이 성장동력을 소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구조조정에는 시간이 많이 든다. 수출이 줄어들면 수많은 농민공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미국은 또다시 나의 ‘누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지난 30여 년 동안 급성장한 것은 자유무역 체제 덕택이었다. G20 정상회의는 그 체제를 건전하게 유지시키자는 것이지 꼭 중국만을 겨냥한 건 아니다. 이 같은 지적에 그는 “그래서 미국이 중국산 타이어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느냐?”고 받아친다.

“G2가 됐으니 세계 경제를 함께 관리하자고 해 놓고는 돌아서서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유럽의 유력 경제잡지인 이코노미스트도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경제 반달리즘(Economic Vandalism·경제 파괴주의)’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친구의 말에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제학자다운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중국산 타이어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고용을 늘리겠다는 오바마의 계산은 틀렸다. 미국에는 저가 타이어 공장이 없기 때문이다. 수입처를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이번 조치는 자국 산업의 문제를 중국에 전가시키는 정치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

‘누나’로 시작된 그의 얘기는 G2에 대한 중국 학계의 시각을 보여 준다. G2라는 허울을 씌우고 중국에 희생만을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과 중국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 경제를 관리한다는 G2 체제는 요원해 보인다. ‘진정한 의미의 G2는 없다’는 얘기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