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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취업 프로젝트] 한발 한발 오르는 계단 저 끝은 마케팅 전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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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정규수씨. 오늘도 한 걸음씩 꿈을 향해 오르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정규수(28)씨는 꿈이 크다. 당장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떠나 도전을 즐긴다. 남다른 경험도 많다. 대학 때에는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남성 못지않은 끈기 역시 장점이다. 유네스코 국제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히로시마와 고베까지 300㎞를 15일 동안 달린 적도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잠시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 한국무역협회가 주관하는 IT마스터 과정에 입문, 자바와 오라클 등 프로그래밍 이론·실무교육을 받고 자바 프로그래밍 자격증(SCJP)까지 땄다. 교육과정 중 한 게임업체에 입사해 1년여 동안 근무했다. 회사에선 일본 담당자로 마케팅 프로모션을 주로 맡았다. 일본 현지에서 게임 유저들을 초청한 홍보행사를 기획해 성공시켰다. 회사의 매출 상승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온라인 게임업체에서의 근무는 즐거웠지만 도전을 즐기는 그의 갈증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게임업체 속성상 진짜 돈이 아닌 사이버 머니를 바탕으로 영업활동을 한다는 게 특히 아쉬웠다. 정씨는 “더 큰 회사로 나가 진짜 돈을 벌고 싶었다”고 했다.

2007년 2월 게임업체에서 퇴사한 직후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아시아 MBA 과정에 진학해 마케팅과 전략 등을 전공하고 올 2월 학위를 받았다. 정씨가 스스로 꼽은 강점은 적극성과 다양성이다. 진중하면서도 활달한 성품 덕에 성별을 불문하고 친구가 많다.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해 현지인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 제일기획과 기독교TV에서 인턴·아르바이트 경력도 쌓았다. 그는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경험이지만 어떤 경험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 씨줄과 날줄이 돼 내 경험들을 하나의 보배로 묶어 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갖췄지만 취업시장에선 아직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비슷한 경력의 남성 구직자보다 불리한 입장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외적인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직장에 꼭 입사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본격적인 취업 시즌에 앞서 취업 전략을 다시 점검해 보기 위해 중앙일보 컨설팅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경험 나열로는 부족하다, 시선 끌 ‘한방’ 써 넣어라

게임업체 1년 근무와 MBA 2년 공부, 희망직무와 연결을

STEP 1 서류 집중 분석

정규수씨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아시아 MBA 과정을 마쳤다. 정씨는 취업 전략을 다시 세우기 위해 이번 컨설팅을 신청했다. [강정현 기자]

이력서 MBA 출신 답게 이력서 내용을 보기 쉽게 정리하고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포장보다 내실이다. 대부분의 경력들이 1~2개월에 그치는 단기 인턴 정도여서 실제 회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객관적인 경험이 부족했다.

삼성광통신 이근면 대표는 “이력서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커리어와 경험을 분명하게 나누는 것”이라며 “분명한 커리어 목표 아래에서 일관성 있게 정리되지 않는 특별활동은 과감하게 삭제하라”고 조언했다. 한두 달짜리 짧은 기간 동안의 경력이나 아르바이트는 인사담당자로 하여금 지원자가 싫증을 잘 내거나 쉽게 이직을 결심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다. 또 너무 나열적이고 세부적인 경력사항은 자신을 과대포장한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짧은 기간의 경력이라도 이를 통해 많은 지식이나 경험을 얻었다면 이 부분을 분명하게 표현하라. 예를 들어 정씨가 대학원 재학 당시 특별활동으로 적은 ‘Asia camp 2007(2주)’ 자체는 인사담당자들의 눈길을 끌 수 없다. 2주간 교육캠프를 열고 운영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교육캠프를 통해 뭘 느꼈으며 이런 경험들이 본인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 적어라.

사실 정씨는 자신의 경력 중 가장 쓸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게임업체 근무(1년간)와 관련, ‘관련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 ‘매출집계 업무’ 등으로 간단하게 적고 있다. 이 정도로는 근무 중 어떤 성과를 냈는지 알 수 없다. 정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음은 물론이다. 최영미 한국 HP 인사담당 이사는 “재직하던 회사에서 고객 프로모션 업무를 수행했다면 어떤 형태의 프로모션을 했고, 또 이 중 어떤 부분에 기여했는지 분명하게 적어야 한다”고 권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력서 내용을 일관되게 가져가는 것이다. 정씨의 이력은 크게 ‘대학(일문과) 졸업-온라인 게임업체 근무-MBA 취득’의 세 단계다. 현재는 마케팅 관련 업무를 원한다.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이 세 단계 이력이 어떻게 마케팅 관련 업무와 연결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정씨는 이력서 전반에 걸쳐 컴퓨터 활용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 관련 능력은 참고사항이지 필수사항이 아니다.

자기소개서 잘 쓴 자기소개서다.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데 내용은 없다. 단순하게 경험만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입사지원자가 몰리는 때라면 개성 없는 자기소개서로 면접기회를 얻기 힘들다. 하물며 정씨는 MBA 출신이다. 나이도 적지 않다. 다양하고 재미난 경험들로 채워 있음직한데, 정작 자기소개서는 서술식으로 단순 나열돼 있다. 읽는 이가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오답을 내지 않으려 모범답안만 적어놓다 보니 다른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와도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고득점을 얻으려는 노력이 아쉽다. 인사담당자의 시선을 끌 만할 내용을 깊이 있게 자기소개서에 녹여 넣어라.

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간 유기적인 연결도 떨어진다. 영화의 예고편처럼 이력서가 인사담당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자기소개서에서 이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는 줘야 하는데, 그런 연결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력서에서 온라인 게임업체의 일본 담당자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면 자기소개서에서는 이 중 강조할 만한 업적을 골라 자세히 적어야 한다.

지원동기와 관련해서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업무가 마케팅이기 때문에 이 업무에 지원한다”고 했으나 마케팅뿐 아니라 영업이나 디자인 등 기업활동 자체가 소비자의 마음을 끌기 위한 행위다. MBA 출신자답게 좀 더 설득력 있게 적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씨는 게임업계가 아닌 타 업종으로의 이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정씨 같은 경력자를 바라보는 잣대는 처음 몸담았던 회사다. 설령 신입사원 모집에 지원해도 마찬가지다. 인사담당자라면 누구라도 첫 번째 회사에서의 경력과 이직 사유를 중심으로 따져볼 것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첫 직장이 어딘가에 따라 지원자의 시장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 타 업종으로의 이직을 원한다면 첫 직장이 할 수 없이 간 곳이 아니라 치밀한 목적의식 아래에서 선택한 곳이란 점을 보여 달라. 면접관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먼저 무너뜨리란 얘기다. 정씨의 경우라면 “(첫 직장은) 이런 분야의 선두주자이고, 작지만 강한 회사였다”는 식으로 말하라. 또 MBA과정을 마쳤음에도 취업이 안 된 이유에 대해서도 방어논리를 개발하라. 답하기 꺼려지는 질문일수록 솔직하고 담담하게 임하는 것은 필수.

나이는 약점이 아니다 “공부하다보니 늦었다”고 답하길

STEP 2 면접 집중 분석

Q 자기 소개를 해달라.

한국HP에서 모의면접 중인 정규수씨

A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즐기는 지원자 정규수다. 서울여대에서 일어일문학을 공부한 뒤 성균관대 MBA를 졸업했다. 기업에 돈을 벌어다 주는 최일선에 마케팅 관련 업무가 있다. 대학원에서 배운 경영학 지식을 토대로 매출신장에 이바지하고 싶다.

▶ 가장 흔한 질문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정씨는 자기 소개서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외워서 답했다. 이러면 점수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자기소개서보다는 좀 더 진전된 내용으로 답하라. ‘지원 분야 관련 지식+경험을 토대로 한 깊은 생각’을 보여달라. 정씨 같은 MBA라면 “이런 경험과 이런 전공을 했다”고 말하는 것뿐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꿈이 있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Q 최근 다른 회사에 지원한 경험과 불합격한 이유는.

A 몇몇 IT기업 면접에 올랐다가 떨어졌다. 여자인 데다 나이가 많아서 불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 정씨는 81년생이다. 물론 적은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정씨 스스로 먼저 나이를 언급할 이유는 없다. 지원자들의 생각과 달리 면접까지 오른 이상 나이는 당락에 큰 영향이 없다. 다만 지원자들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의식 중에라도 언급을 꺼리거나, 먼저 체념하듯 말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얼굴에 있는 흉터를 가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손으로 가리다 보면 상대방은 오히려 그곳만 쳐다보게 된다. 나이뿐 아니라 스스로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담담하게 답하라. 정씨의 경우 “원하는 분야로 공부를 하다 보니 늦어졌고, 이 기간 동안 어떤 준비를 했다” 정도로 답하면 되겠다.

Q MBA 진학 이유는.

A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배웠다. 첫 직장에서 일하며 더 큰 기업에 진출해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영학을 체계적으로 배워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었다.

▶ 면접관들에게 전혀 어필하지는 못하는 평이한 답이다. 공급자(지원자)의 눈이 아니라 수요자(기업)의 입장에서 답해 달라. 기업은 원론적인 대답보다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답을 원한다. 들어서 뻔한 얘기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Q 공인영어점수가 낮은데.

A 대학 재학 중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말하고 듣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MBA 과정도 영어로 진행되고, 시험도 영어로 치렀지만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 공인영어점수와 실제 언어구사능력은 차이가 있다. 일단 정씨가 택할 수 있는 대답 중 가장 적절한 답을 했다. 그렇지만 정씨의 점수(820점)는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는 점수대가 아니다. 게다가 정씨는 자기소개서 등에 ‘영어 능숙’이라고 적어놓았다. 적어도 기업이 납득할 만한 점수를 만들어 놓은 다음 시험점수보다 실제 실력이 낫다고 말하라. 스스로 지원서류에 영어가 능숙하다고 적어놓은 만큼 면접관들은 분명 이를 시험해 보려 들 것이다.

Q 5, 10년 뒤 꿈은 뭔가.

A 입사 후 처음 1년간은 업무 적응에 주력할 것이다. 5년 후에는 맡은 분야에서의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할 것이다. 10, 20년 후에는 글로벌 마케팅 매니저로 실무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 원서를 제출하는 순간부터 이 회사 직원이라는 생각으로 면접에 임하라. 미래 계획은 이 회사에 연관시켜라. 가령 “회사의 어느 직급까지 가겠다. 현재 ○위인 제품의 매출을 세계 1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답하라. 이런 질문은 지원자 스스로 기업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확실히 어필하라.

Q 교환학생에서의 경험은 어땠나.

A 다양한 인종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 간의 차이 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아주 일반적인 대답이다. 교환학생이나 인턴, 공모전 등은 이제 대개의 지원자들이 기본으로 갖춘 스펙이다. 스펙 자체로 인정받는 시절은 지났다 . 대답엔 ‘자신의 시각’이 녹아있어야 한다. 차라리 “체력은 서양인에 비해 딸렸지만 암기력은 내가 훨씬 낫더라”는 식으로 답하라. 자신이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듣는 사람도 재미가 있다.

실전 면접 평가 정규수씨의 면접 태도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대답도 막힘 없었고 말의 조리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그랬어요. 저랬어요”식의 답이 삐져나온다. 면접관의 사고로 생각하고 면접관의 사고로 답해라. 면접관이 답변에 빠져들 수 있도록 뭔가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그들의 언어로 얘기해야 한다. 정씨는 스스로를 나타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무난한 대답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 때문에 팀워크가 필요한 일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감을 더 가져라. 정씨 같은 여성지원자에게는 결혼과 관련한 질문도 나올 수 있다. 미리 답을 생각해 둬라. 정답은 없다. 하지만 “회사를 위해선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식의 대답이 가장 틀린 답임을 명심하자.

STEP 3 총평

정규수씨는 다양한 경력과 스펙을 갖췄다. 자기계발을 꾸준히 했다는 점은 분명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정씨의 경력들은 대개 단기간에 그치는 것들일 뿐 진정한 의미의 커리어가 아니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듯한 인상도 준다. 반면 온라인게임 업체에서의 근무 경험은 별로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첫 직장이 어디고 이직 사유는 무엇인가’는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눈여겨 보는 부분이다.

확실한 한방이 없다면 차라리 자신의 실제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것은 어떨까. 이 대표는 “일부 경력을 감추려 하기보다는 모든 걸 확실히 공개하고 이들 경력이 마케팅 전문가로 향하는 선상에 있는 것임을 강조하라”고 조언했다. 스펙이 부족하다면 본인이 읽은 책이나 수업시간에 배운 경영 사례 등에서 인용해 쓸 수도 있다. 물론 남발은 금물. 분명한 목적의식 아래에서 움직였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면 MBA 학위나 대학원 진학 등도 ‘학력 세탁용’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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