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만 꿩먹고 알먹고] 문제점 많은 사모 B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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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모 할인식 BW 발행이 문제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소액주주들의 이해를 외면한 채 대주주만 독점적 자본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대주주들이 재산증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발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BW 발행을 통한 3조원 규모의 증자계획을 발표한 세종증권도 대주주 몫으로 돌아갈 막대한 자본이득으로 논란이 됐었다.

그러나 세종증권의 경우 일단 기존 주주들에게도 BW를 인수할 기회가 주어지는 '공모 (公募)' 발행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올들어 부쩍 늘어난 '사모 할인식' 과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대기업의 변칙적인 자산증식이나 사전상속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내로라하는 상장사까지 은밀한 방법을 통해 대주주 배불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 대주주 재산증식은 땅짚고 헤엄치기 = 대주주는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엄청난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주가가 오르면 오른 만큼 시세차익을 챙기고, 설사 주가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BW를 보유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

신주인수권을 아주 싼값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표면금리 만큼의 이자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BW를 사들인 대주주가 추가로 확보한 지분율 만큼의 보유주식을 시장에 팔고, 이 돈을 굴리면 경영권 방어에 대한 염려없이 막대한 이자소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 W기업의 한 임원은 "지분 확보를 위해 BW를 발행했다" 면서 "대주주의 변칙적인 재산증식과는 무관하다" 고 말했다.

◇ 피해보는 소액주주 = 대주주들이 누리는 이득은 향후 이들이 신주인수권을 행사했을 때 주식을 보유한 일반 주주들이 입게 되는 손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식 공급물량이 늘어나면 결국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주인수권 행사시점에서 발행 주식수는 급증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주식가치 하락이 시장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일반 투자자들은 이같은 상황을 잘 모르고 대주주가 BW를 보유하면 주가를 관리할 것이므로 되레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 허울좋은 운영자금 조달 = 사모 BW를 발행한 이들 기업은 예외없이 공시를 통해 발행목적을 '기업 운영자금 조달' 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솔텔레콤은 1백1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하고 고작 10억여원을 조달했다.

제일엔지니어링도 1백20억원 규모의 BW 발행을 통해 9억원을, 종근당은 1백억원의 BW 발행으로 1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을 뿐이다.

이들 회사의 자기자본이 98년 12월 현재 각각 4백19억원 (한솔텔레콤).4백94억원 (제일엔지니어링).2천67억원 (종근당)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BW 발행의도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 변칙적인 부 (富) 의 대물림 수단 = 할인 BW를 대주주가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막대한 규모의 증여세를 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백억원을 증여했다고 가정했을 경우 증여세는 현행 세율로 계산하면 최고 40억원에 이르는데 이 세금을 지금 내는 것이 아니라 40년 후 만기 시점에 내면 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도 변칙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고심 중이지만 BW를 이미 발행한 기업 대주주들의 편법 탈세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

◇ 자본시장 신뢰도 저하 =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편법 사모 할인식 BW 발행이 대주주가 자본이득을 혼자 챙긴다는 부작용말고도 장기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숨겨진 BW의 물량이 계속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주가상승을 가로막을 뿐더러 국내외 투자가들의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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