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무늬만 북한産' 판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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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월 초 압록강과 인접한 중국 단둥 (丹東) .중국 고사리 3.8t을 실은 트럭이 북한 국경을 넘어 함경북도 나진으로 향했다.

중국산이지만 부대마다 원산지를 '북한' 으로 적은 스티커들이 이미 붙어 있다.

북한산 (産) 으로 위장시키기 위한 가짜다.

나진항에서 중국선적 화물선에 옮겨 실린 고사리는 이틀 뒤 부산항에 도착, 수입업자인 서울의 S무역에 넘겨졌다.

위조된 북한 조선대외상품검사위원회 명의의 산지증명서 (원산지증명서의 북한식 명칭) 와 농업위원회 중앙식물검역소 명의의 식물검역증이 통관과정에서 S무역측에 의해 버젓이 제출됐다.

이 고사리를 중국 무역상인 C공사가 북한의 '만년건강' 사로부터 산 것처럼 꾸민 유령 구매계약서도 첨부됐다.

모두 S무역의 주문을 받은 C공사측이 미리 만든 가짜서류들이다.

S무역이 C공사에게서 산 중국 고사리를 'C공사의 중개를 통한 북한 고사리' 로 둔갑시킨 것이다.

고사리는 결국 북한물품 반입시 관세를 면제토록 규정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에 따라 한푼의 관세 (고사리의 경우 산지가의 30%) 도 물지 않고 통관됐다.

지난달 3일 뒤늦게 부산세관에 적발된 가짜 북한 산나물 반입 사례다.

북한산을 가장한 중국 농수산물이 마구 들어오고 있다.

'북한물품 무관세 반입' 혜택을 노리고 일부 국내 수입업자와 중국 수출업자가 짜고 벌이는 '사기 교역' 을 통해서다.

종래의 소형 공산품 위주에서 최근 농수산물로 주대상이 바뀌고 있다.

애초 국내가보다 헐값인 데다 관세 (품목별로 30~8백%) 까지 물지 않고 대량 반입됨으로써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국내 농가와 정식 수입업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중국산의 북한산 둔갑은 북한에서 발급되는 산지증명서와 검역증 등 관련서류를 위조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중국에서 산 물품을 북한의 남포.나진항 등에 잠시 경유시키고 위조서류들을 첨부하는 수법으로 관세당국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물품이 진짜인지를 가릴 방법은 현재로선 전혀 없다.

첨부되는 서류의 진위를 확인할 북한당국과의 대화채널이 92년 남북고위급회담 중단 이후 완전히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농수산물의 경우 중국산과 북한산의 구분이 어려워 더욱 속수무책" 이라는 것이 관세청 윤석기 조사과장의 말이다.

이를 반영하듯 올들어 4월 말까지 반입된 북한물품 (2천9백63만달러) 중 농수산물이 49.8%인 1천4백75만달러를 차지했다.

▶94년 8.7% ▶95년 10.0% ▶96년 12.9% ▶97년 14.2%에 불과하던 반입비율이 지난해 (23.6%) 부터 껑충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세관 김우규 통관국장은 "농수산물, 특히 양이 많고 자주 들어오는 것은 대부분 가짜로 본다" 면서도 "그러나 제보 없이는 아예 손댈 수가 없고, 조사를 하더라도 물증확보가 어려워 범행을 적발해내기는 별따기" 라고 설명했다.

이들 가짜 북한물품들은 대개 중국의 단둥 (丹東). 다롄 (大連).옌지 (延吉) 등지에서 육로로 북한의 나진.남포항으로 운반된 뒤 인천.부산항 등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악용, 국내 및 중국의 업자들이 산지가의 최고 8백%대 (전분종류) 까지 붙어야 할 관세를 면제받아 국내에 유통시키고 적지 않은 시세차액을 버젓이 나눠갖고 있는 것이다.

기획취재팀 = 김석현.신동재.강갑생 기자

제보 = 751 - 5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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