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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한국21' 기본안서 또 후퇴…돈나눠먹기 변질우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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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1세기를 앞두고 세계 수준의 핵심 분야와 우수 인력을 양성하려는 정부의 '두뇌 한국 21' (BK21) 사업이 밀실행정과 이에 대한 대학교수들의 집단반발로 정부지원금 나눠먹기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대학가의 심한 반대에 부닥친 정부가 잇따라 당초 계획했던 사업 기본안에서 후퇴하는 가운데 교수들은 아예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어 교육개혁이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국민회의.자민련과 교육부는 7일 당정회의를 열고 BK21사업을 일부 수정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교수들은 "BK21사업의 근본문제는 대학 서열화와 중앙.지방간 격차 심화, 기초과학 붕괴, 입시경쟁 격화 등 대학교육의 황폐화" 라고 지적, 인문사회계열사업뿐 아니라 계획 전체의 백지화.재검토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8일 갖기로 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 당정합의 수정안 = 당정은 이 사업 응모 때 교수 신분과 직결되는 교수연구업적평가제.연봉제.계약제 도입 의무 등은 폐지키로 했다.

또 대학원 중심대학 육성사업에서 과학기술 영역은 그대로 추진하되 인문사회 영역 (한국학 등 5개 분야) 은 별도로 분리해 재추진하고 지역중심대학 육성사업에서 지방대도 자율적으로 대학원생의 지원을 허용키로 했다.

BK21사업은 정부가 연간 2천억원씩 7년간 1조4천억원을 투자, 세계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과 학부 중심의 지역중심대학을 키우겠다는 것이 골자다.

원래 계획은 응모조건으로 ▶대입제도 개선 ▶지원받는 분야는 2001학년도까지 학부정원 30% 감축 ▶교수연구업적평가제 등 도입 ▶대학원생의 절반은 타대학 학부생에게 배정 등이 포함됐었다.

대학제도개혁.구조조정을 겨냥한 것이다.

◇ 교수들 집단반발 = 당정이 이처럼 수정안을 내놓은 것은 "BK21사업은 대학의 서열화, 대학학문의 자율성 침해" 라는 대학교수들의 반발이 예상 외로 거세기 때문이다.

60년 4.19혁명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15일 부산대에서 국.공립대 교수 1천여명이 거리 시위를 한데 이어 사립대 교수협의회.서울대 교수협의회의 반대 성명이 잇따랐다.

특히 인문사회 등 기초과학분야 교수들의 반발이 컸다.

8일에는 '반민주적 대학정책의 전면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대회의' (공동대표 손호철 민교협공동의장) 주최로 교수 1천여명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가진 뒤 정부 세종로청사까지 가두시위를 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계획 입안 때 대학가의 의견수렴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 향후 전망 = 지난달 갑자기 지원조건 (SCI기준) 을 낮췄던 정부가 또다시 사업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수정안을 내놓음에 따라 당초 사업도입 취지가 무산됐다.

우선 이른 시일 내에 국제수준의 연구인력 양성체제를 갖추기 위해 '지방대는 우수 학부인력을 양성하고 주요 핵심분야 대학원은 우수 연구인력을 키운다' 는 구도가 흔들리고 자칫 대학간 '나눠먹기식' 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교수업적평가제 등을 도입, 연구수준을 높이고 대학개혁을 이끌어낸다는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또 교수들이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는데다 정부가 인문사회 분야 대학원중심대학을 원점에서 재추진키로 해 상당한 혼선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교육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 구조조정.교수임용쿼터제 등 각종 대학개혁 사업은 물론 자칫 교원종합대책 등 교육개혁 정책 전반에 불똥이 튈 전망이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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