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커야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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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15면

“성기 크기가 아니라 고환의 크기가 중요하지요.”
“강 박사님, 고환은 정자를 생산하는 곳 아닙니까? 근데, 저희는 더 이상 아기 가질 계획이 없는데요?”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성기능 문제로 필자를 찾은 30대 후반의 A씨는 고환이 비정상적으로 작은 점을 지적하자 이렇게 반문했다. A씨를 비롯해 한국의 많은 남성이 성기의 크기에 집착하지만 이는 대부분 열등감과 콤플렉스일 뿐 실제 성생활의 만족과 별로 상관이 없다. 오히려 크기가 남성에게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은 바로 고환이다. 고환은 건강한 정자를 생산해 임신에 필수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남성호르몬을 생산하기에 성기능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인종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나지만, 대략 정상적인 고환의 크기는 18cc 내외다. 삶지 않은 메추리알 크기로 보면 된다. 해당 평균 크기에서 5cc 정도의 편차는 정상 범주에 속한다. 이 범위 내에선 고환이 크다고 더 성기능이 좋거나 작다고 성기능이 취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환의 크기가 10cc 내외이거나 예전에 비해 크기가 점점 위축된다면 이는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 실제로 A씨의 남성호르몬을 검사해 보니 수치가 3.0~3.5ng/mL 이하로 성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줄 만했다. 고환이 위축돼 남성호르몬의 생산이 줄면 성욕이나 발기력, 사정 시 쾌감 등이 저하되고, 정액량 감소와 피로감 등의 증상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고환의 위축과 남성호르몬 감소 문제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겪고 있다. 고환은 열과 독성물질,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새 생명의 씨앗을 만드는 곳인 만큼 고환세포가 맑고 깨끗한 혈액과 환경을 요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거나, 지나친 음주와 흡연, 스트레스, 불면증, 비만, 운동 부족, 비뇨기 감염 등에 따라 고환은 제 기능을 잃기 쉽다. A씨 역시 근무시간 내내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매달리며, 복부비만에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푸는 등 악화 요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외에도 남성 호르몬 저하의 문제로 필자를 찾는 직업군 중에 변호사, 고온 환경의 근로자, 운전기사, 고시생, 밤낮이 바뀐 직업, 습관성 알코올 문제를 가진 남성이 많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밖에서 주는데 뭐하러 생산해?’
뜬금없는 이 소리는 남성호르몬 문제의 치료에 있어 고환에 입이 있다면 한 번쯤 튀어나올 볼멘소리다. 즉 시중엔 남성호르몬이 부족하다고 호르몬제를 무슨 정력제처럼 사용하는 남용 사례가 너무 많다. 원인은 방치한 채 손쉽게 보충만 하다가는 고환의 자연생산 기능은 더욱 위축되는 ‘네거티브 피드백’에 빠질 수 있다.

또한 호르몬을 장기간 사용하면 부작용의 위험성도 커진다. 따라서 남성호르몬이 감소했다면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하며, 호르몬 부족이 심하거나 2차적 문제가 우려될 경우 남성호르몬을 보충하되 가능한 한 단기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

앞으로는 사우나에서 성기 크기 비교에 집착해 쓸데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습관은 빨리 버리길 바란다. 그것 때문에 요상한 시술에 현혹되는 것은 성의학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이전보다 고환의 크기가 유달리 작아진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자기애(愛)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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