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밖에서 본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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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얼마전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경제회복에 관한 국제세미나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의 길로 들어섰나 궁금해 했다.

한국 참석자의 설명은 간단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강한 지도력과 정치적 안정, 관민의 일치된 개혁의지와 저돌적인 개혁 추진, 그리고 고통분담 속에 유지된 "우리는 하나" 라는 분위기가 그 바탕이라고 했다.

"한다면 한다" 는 한국인의 과단성을 익히 알고 있는 외국 전문가들도 쉽게 수긍하는 눈치였다.

지난 1년반 한국의 위기극복과 개혁은 앞만 보고 치달았다.

아무도 감히 불평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쉬울 수 있었다.

위기극복도, 경기회복도 개혁만 하면 됐으니까. 그러나 최근 몇 주일을 지켜보면 걱정이 절로 앞선다.

마치 80년대 말을 보는 듯하다.

한국의 발빠른 위기극복을 칭찬하던 관찰자들조차 한국의 자만 (自滿) 을 지적할 정도가 돼버렸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소비심리나 주가의 급속한 회복이 아니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위기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한국경제의 '피로' 현상이다.

"할만큼 했으니 좀 쉬어 가자" "잃었던 내 몫을 되찾자" 는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혼란 때문인지 개혁의 지도력이 실종한 듯하고, 성장과 실업감축 때문인지 기업.노조.공공부문 할 것 없이 모두가 더 이상 개혁과 구조조정의 고통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또 일부 지도층의 부패상이 드러나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사회적 일체감마저 사라지고 있다.

신속한 위기극복과 성공적 개혁을 이끌어온 그 모든 추진력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위기를 맞았던 한국이 바로 어제 보이던 추태다.

지금 경제주체들끼리 싸우는 모양새는 위기 전과 너무나 빼닮았다.

이것이 국내외 관찰자들이 걱정하는 한국경제의 자만이다.

99년을 '개혁 마무리의 해' 로 삼기에는 너무 많은 목소리가 들린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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