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핵우산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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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핵무기에 대한 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생존 전략은 핵전쟁을 일으킨 나라도 함께 망하도록 해서 핵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상호 보장된 파멸(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이라 불린 이 전략은 냉전 내내 미국과 소련이 추구했다.

이 전략은 그럴듯했지만, 그것엔 틈새가 있었다. 만일 적국이 기습적으로 핵무기를 써서 상당한 피해를 준 뒤 바로 휴전을 제의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공격을 당한 나라의 지도자에겐 두 길이 열려 있다. 하나는 원래의 계획대로 보복하는 길이다. 두 나라는 물론 함께 파멸할 터다. 다른 하나는 이미 입은 손실을 무시하고 협상에 나서는 길이다. 이 경우, 적국의 기습 공격에서 살아남은 자국민들과 나머지 인류가 함께 살아남을 터다.

합리적 지도자는 후자를 고를 것이다. 이미 본 피해가 원통하다고 온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길을 고르는 것은 어리석다. 이미 한 투자가 아까워서 수익성 없는 사업에 계속 투자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과 논리적으로 같다. 바로 그런 가능성이 기습 공격의 유혹을 크게 할지 모른다고 미국 전략가들은 걱정했다.

그들이 생각해낸 대책은 자동 보복이었다. 핵무기 공격을 받았을 때, 지도자의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컴퓨터가 모든 핵무기들을 발사하도록 하면, 그런 위험이 사라진다는 논리다.

‘멸망 기계(Doomsday machine)’라 불린 그 장치가 실제로 개발된 적은 없지만, 그것은 MAD의 약점을 잘 드러냈다.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MAD에서 벗어나려고 탄도 미사일 요격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요격 기술이 원시적이어서, 그런 전략은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고 폄하됐다. 기술이 발전하자, 그것은 현실적 전략이 됐고 요즈음엔 요격 미사일 체계는 핵우산의 일부로 여겨진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공격했을 때, 미국의 핵우산은 과연 제때에 펴질까. 핵우산이 실제로 쓰인 경우는 아직 없으므로, 이 물음에 대한 확답은 물론 없다. 그러나 우리로선 미국 대통령이 망설임 없이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하리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만일 북한이 작은 핵무기로 테러와 비슷한 형태의 공격을 하면,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안전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켜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만일 그때 북한이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고 보상하겠다고 나서면, 미국 대통령으로선 북한의 핵무기 공격을 지나간 일로 치부하는 ‘합리적 결심’을 하지 않을까.

미국의 핵우산에 있는 그런 틈새를 북한이 이용하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들은 청와대 기습 사건, 아웅산 폭파 사건, 대한항공기 격추 사건과 같은 끔찍한 짓들을 저지른 집단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런 틈새를 이용해서 우리를 끊임없이 협박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그동안 북한 핵무기는 정당성이 크게 강화됐다. 무엇이든 오래 지닐수록 소유의 정당성은 커진다.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보유 국가들에 부여된 정당성이 일찍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할아버지 권리(grandfather rights)’이므로, 보유 기간은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이런 사정을 반영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자는 기류가 중국에서부터 퍼져 나온다. 미국도 지쳐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황에 자동적으로 대응하는 ‘멸망 기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적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기엔 핵우산에 있는 틈새가 너무 위험하고 북한이 너무 사악하다고. 그리고 선언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으면,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노라고. 그 길만이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재앙을 막을 수 있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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