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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례'는 인간파괴…모델출신 인권운동가 디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아직도 아프리카에선 매년 2백만명의 소녀들이 야만적이고 비위생적인 할례 (割禮) 의식 때문에 죽어갑니다. 저도 한 여성으로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갖은 학대에 고통받는 아프리카의 여성을 도웁시다. "

현재 유엔인구기금 (UNPF) 의 명예대사 자격으로 전세계를 돌며 아프리카 여성인권을 호소하고 있는 슈퍼모델 출신의 워리스 디리 (32)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가난한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시절 겪은 고통속으로 뛰어들어 '잘못된 전통' 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다섯살 나던 어느날 밤. 그녀는 어머니 손에 끌려 마을 주술사의 집에 도착했다.

주술사의 녹슨 면도날은 어린 소녀의 성기 한 부분을 도려냈다.

상처는 수개월이 지나도록 핏자국과 고름 범벅인 채 커져만 갔다.

한달동안 누워 지내야 했다.

찢어지는 아픔에 잠도 이룰 수 없었다.

비위생적인 수술로 인해 그녀의 여동생과 두 조카는 목숨을 잃었다.

디리가 열네살이 되자 아버지는 그녀를 예순이 넘은 노인에게 낙타 다섯마리를 받고 시집보내기로 결정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밤중에 무작정 집에서 도망쳤다.

사막의 모랫바람을 뚫고 배고픔을 참으며 열흘만에 도착한 곳은 수도 모가디슈의 부유한 친척집. 하지만 그곳도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온종일 청소며 주방일로 하인과 다름없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 친척이 영국 주재 외교관으로 발령받아 그녀도 함께 영국으로 건너간다.

집안일만 해야 했던 그녀로선 영국생활 역시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의 사춘기 기억은 일과 고통뿐이에요. " 결국 또다시 집을 뛰쳐나온 디리는 지난 87년 유명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세계적인 화장품 업체인 레브론 전속모델 계약을 비롯, '보그' 등 유명 패션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일약 모델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각종 패션쇼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과거의 수치스런 기억은 영원히 가슴에 묻기로 했다.

그러던 지난 96년 그녀는 한 패션잡지에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더이상 자신이 겪은 아픔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여성할례 풍습 폐지운동에 앞장서기로 했다.

지난해 말 '데저트 플라워 (사막의 꽃)' 라는 자서전을 내놓기도 한 디리는 아프리카 30여개 국가를 중심으로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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