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가족·노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난 15일 이현희(38·강서구 가양동)씨는 올해 3번째로 야구장을 찾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일곱살 난 딸과 함께다. 남편은 퇴근하고 곧바로 야구장으로 왔다. 이씨는 “같은 팀을 응원하다보면 생판 처음 보는 사람도 반가운 이웃같고 아이들도 신바람이 난다”고 야구장 분위기를 전했다. 시즌 막바지, 히어로즈의 선전을 갈망하는 마스코트 턱돌이의 외침과 함께 목동구장이 스트레스의 배출구로 자리잡고 있다.


‘아담한’ 목동 야구장 분위기도 편안
지난 15일 오후 5시 30분. 오목교 역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오후 6시 30분부터 목동 야구장에서 열리는 히어로즈와 기아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경기 시작 30분 전, 관객석은 분홍(히어로즈)·노랑(기아)으로 갈려 있다.

관객의 면면도 다양해 보인다. 연인들, 아저씨 부대, 자녀를 데려온 30대 부부부터 60대 노부부까지, 벌써부터 들뜬 모습이다. 1회라도 놓칠까봐 교복을 입은 채 다급하게 뛰어오는 청소년들도 보인다.

파주에서 왔다는 이경원(61)씨 부부는 둘다 야구팬인 천생배필이다. 그는 “좋아하는 구단의 홈구장이어서 분위기도 가족 같고 응원도 재밌다”고 밝혔다.

목동 야구장은 1만6233㎡로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잠실 야구장의 5만9000㎡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다. 다른 야구장과 다르게 외야로는 관객석이 마련돼 있지 않아 더욱 소박해 보인다.

1989년 준공된 이곳은 줄곧 아마추어 경기를 열다가 지난해 히어로즈 창단과 함께 홈구장이 되면서 프로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히어로즈는 젊고 강한 팀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도루 1위를 기록할 만큼 기동력도 뛰어나다. 올해 2년 차인 이 팀의 순위는 현재 6위.투수력만 좀 보강하면 4강진입도 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목동 야구장은 강서·양천주민 외에 영등포·인천서 오는 관객도 적지 않다. 이민정씨와 송화연씨(28·영등포구 여의도동)도 가까운 거리에 끌려 목동 야구장을 찾았다. 이씨는 가끔 인천으로도 야구를 보러 가는 열혈 팬이지만 송씨는 목동 야구장 경기만 관람한다. 송씨는“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거리에 야구장이 생겨반갑다”고 전했다.

공개 프로포즈는 목동 야구장의 또 다른 재미다. 5회 말 경기가 끝나면 예비신랑이 관객들 앞에서 당당하게 사랑을 공개한다. 9월마지막 주엔 올해의 8번째 프로포즈가 예약되어 있다.

경기가 진행되면 야구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6회 말 뒤지던 히어로즈가 바짝 따라잡자 “와”하는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날려버려 00” “안타 00’”“파이팅”을 외친다.

주민과 함께 하는 ‘목동 해피존’
야구장은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다. 유모차를 탄 아기부터 아버지와 유니폼을 맞춰 입은 어린 관객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히어로즈 다음 팬카페 ‘히어로즈 사랑 영원히’의 윤영구씨(39인천)는 “팬카페 회원대부분은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야구장을 다녔고 지금은 자신의 자녀들과 야구를 보러온다”며 “아이들에게 스포츠 정신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과 하나 되는 감동을 맛보게 하는 데 야구장 만한 곳이 없다”고 소개했다.

목동 야구장은 목동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야구를 볼 수 있도록 지정석인 ‘목동 해피존’을 운영하고 있다. 2층에 자리한 이곳은 ‘히어로즈 구단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고객은 목동주민’이라는 취지에서다. 또 목동 5, 6단지 주민들은 야구장에 무료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이선이(34·양천구 목동 5단지)씨는 목동 야구장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입장료를 내지 않아 언제든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린 시절 목동 야구장에서 했던 아마추어 경기는 낮 시간이어서 볼 수 없었다”며 “지난해 무료 입장이 가능해지면서 시간도 때울 겸 야구장에 들르기 시작한 것이 야구의 매력에 빠진 계기”라고 설명했다. 히어로즈 다음 팬카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역팀인 히어로즈를 응원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며 “최근 주말이 되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야구장으로 가족 나들이를 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덧붙였다.

중학생인 노승민·최현탁·윤충한군은 스포츠경기를 관람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숙제 때문에 야구장을 찾았다. 목5단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주말이면 부모와 자주 야구장에 온다. 그러나 집 근처 야구장이 무조건 달갑지만은 않다. 윤군은 “경기가 있는 날 야구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이 들뜨지만 실제로 야구를 보러 올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이란다.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목동 야구장은 경기가 있는 날 소음과 교통혼잡 문제가 제기된다. 밤 10시가 넘으면 앰프 사용을 중단하는 등 구단 측이 주의를 기울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신수연 객원기자 ssy@joongang.co.kr >

< 사진=김진원 기자 jwbest7@joongang.co.kr >


[사진설명]목동 야구장에서는 같은 구단을 응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친구가 된다. 목동 야구장 전경과 히어로즈 다음 팬까페 회원인 윤영구씨 가족, 히어로즈 응원단의 턱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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