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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올림픽 활기로 재충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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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인간을 지상의 총아로 만든 것은 상징을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살아 움직이는 상징과 숨쉬는 신화를 봤다. 이 지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게 눈부신 일이라는 것을 모처럼 확인했다.

신성한 나무, 올리브 가지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쓰면 문득 승리의 화신이 되고 동시에 신화 속 태양의 신 페보스나 지혜의 신 아테나로 화하는 이 기막힌 상징이 꿈틀거리는 아테네 올림픽은 인류가 함께 쓰는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가 아닐까.

텔레비전 앞에서 밤잠을 설치며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 어어질 때마다 깊은 밤도 아랑곳하지 않고 환호를 내지르고 새벽임에도 불끈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는 힘을 오랜만에 맛보고 있다.

처음 우리 선수의 목에 메달이 걸리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목젖이 떨려오는 감동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간절히 승리를 기원해도 어이없이 패배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패배가 아니라 기회의 보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게 또한 올림픽이다.

올림픽 사상 56년 만에 드디어 우리 축구가 세계 8강에 오를 때도 그랬지만 기실 모든 게임은 피를 말리는 접전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래서 승리의 환호가 그렇게 값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여름 유례 없는 폭염으로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이, 전쟁으로 얼룩진 세계의 여러 현실이, 숨막히는 정치와 경제의 갈등이 상큼한 힘과 열광으로 바뀌는 순간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숨죽이며 당기는 우리 선수의 활시위에 함께 숨을 죽이고, 선수가 쿵하니 상대를 눕힐 때는 시름이 함께 무너지는 쾌청한 기분을 맛보기도 하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더 남아 있지만 현재 스코어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자부와 희망이 동시에 새겨져 있다고 하겠다.

결국 인간이 사는 곳에는 경쟁이 있게 마련이고 승자와 패자도 존재한다. 이기느냐 지느냐, 이 단순한 갈림길 앞에 인간은 언제나 뜨거운 심장을 바치는 것이다.

에게해의 햇살 아래 펼쳐지는 오늘 저 게임들이 상큼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 경쟁 속에 정정당당함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승자의 기쁨이 가치 있고, 패자가 당당하게 승자를 포옹할 수 있는 정정당당함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올림픽 하면 맨발의 아베베 선수가 생각난다. 아프리카 오지의 선수로 17회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의 우승을 함으로써 조국 에티오피아를 세계에 알렸다. 그의 조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무솔리니 군대에 의해 25년간이나 점령당한 치욕을 그의 맨발로 씻어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과거의 상처를 후벼 파기 바쁜 살벌한 정치 뉴스와 벼랑에 있는 경제 뉴스들을 에게해의 햇살 아래 펼치는 우리 승부사들의 승리로 말끔히 씻어줬으면 한다.

천년의 시간을 넘어 신화 속의 인물들이 태양 아래 현신한 것처럼 아름다운 개막식에 남북이 손을 잡고 등장했을 때 자꾸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도 잊을 수 없다.

승리의 월계수 가지 하나를 이마 위에 얹기 위해 인간이 할 일이란 결국 연습뿐이라는 것도 참 의미심장하다.

벌써부터 이런 생각이 든다. 올림픽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지만 서늘한 가을이 곧 손끝에 만져지리라. 봄부터 땀 흘린 이에게는 알알이 황금메달이 결실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시 이번에는 메달을 놓쳤다 하더라도 기회라는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또한 기쁘다.

하지만 기회의 신은 앞에만 머리가 있고 뒤엔 머리가 없는 대머리라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얼른 움켜쥐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테네에서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이 안겨준 활기와 생명력을 이 땅의 정치.경제의 새로운 전환의 기회로 만들자고 한다면 너무 성급한가.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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