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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소, ‘88세 새색시’ 소리 한자락 들어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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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올 여든여덟의 명창 이은주씨가 ‘장기타령’을 부르고 있다. 지금도 손수 빨래를 하고, 김치를 담가먹는 등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 [오종택 기자]


“자, 새색시 들어갑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팔순의 스승이 연습실에 들어갔다. 방에 있던 제자 20여 명이 환호를 터뜨렸다. “선생님, 정말 새색시네.” 장구채를 든 스승이 한가락 뽑았다. “지화자, 에~~에~에에 지화자 자화자.” 경기민요 ‘장기타령’이다. 제자들이 어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췄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3가 단성사 뒤편 아담한 한옥에 구성진 가락이 흘렀다. 경기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이은주씨의 자택이다. 26일 서울 KBS홀에서 열릴 이씨의 미수(米壽·88세) 및 방송데뷔 70년 축하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공연은 이씨를 사랑해온 팬들에 대한 감사 차원에서 무료로 열린다.

이 명창은 ‘민요계의 전설’ ‘민요계 최고스타’로 불린다. ‘배뱅이굿’의 이은관(92)옹을 빼고 현역 최고령 소리꾼이다. 그와 함께 한때 경기민요 트로이카로 불렸던 안비취씨는 1997년 타계했고, 묵계월(89)씨는 2005년 은퇴했다. 그를 거쳐간 문하생만 수백 명에 달해 ‘이은주 사단’이라는 말도 있다.

무엇보다 목청이 곱고 또랑또랑하다. 몸집은 자그맣지만 자세는 반듯하다. 그의 소리 입문은 ‘생계형’에 가깝다.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를 고향 경기도 양주에 남겨두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에 와서 원경태 명창 밑으로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했고, “큰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스승의 격려가 힘이 됐다.

“처음엔 얼마나 맞았는지 몰라요. 요즘처럼 녹음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따라 했는데 이튿날에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일어서!’라는 호령과 함께 회초리가 떨어졌지요. 저처럼 고생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나요. 아마 순진해서 견뎠을 겁니다.”

이 명창은 1939년 인천 흥명극장 경연에서 ‘수심가’로 1등을 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관객 인기투표로 순위가 결정됐다. 그리고 그 해 8월 KBS 전신인 경성방송국 음악프로에 출연했다. “더위를 쫓느라 얼음이 가득 담긴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큐사인이 떨어지자 ‘소춘향가’를 불렀던 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해요.”

그는 55년 서울 단성사 명창대회의 추억도 들려주었다. “10여 명의 경쟁자들이 인력거를 타고 거리를 돌았어요. 대회를 알리려는 거였죠. 얼마나 창피했는지. 조그만 여자가 인력거를 타고 간다고 손가락질도 받았어요. 결국 ‘수심가’로 1등을 했어요. 상품으로 자개장과 금반지를 받았는데, 자개장은 수양어머니 차지가 됐죠. 나는 애만 낳은 셈이죠. 하하.”

이후 방송과 무대를 오가는 분주한 생활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만 400여 종. 대단한 수치다. “거의 하루도 쉰 날이 없었어요. 오늘은 방송, 내일은 극장…. 그래도 지각 한번 없었습니다. 내 팔자니까, 죽으나 사나 노래를 끌고 가야 한다고 결심했어요. 여자로서 편한 팔자는 아니지만 노래만 나오면 그렇게 좋았어요. 예전에 매를 맞은 게 되레 약이 된 것 같습니다.”

그가 한창 뛰던 시절, 민요는 서민들 최고 오락거리였다. 김정구·황금심 등 대중가수, 장소팔·고춘자 등 만담가와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당시 극장은 종합오락세트였다. “다들 언니·동생으로 지냈어요. 일본 노래도 많이 알았는데 다 잊어버렸네요. 황금심의 ‘삼다도 소식’이 애창곡이었죠.”

이 명창은 연말께 소리극 ‘은주 이야기’를 선보인다. 그의 노래인생을 민요가락에 얹은 무대로, 국악인 한 개인의 삶을 극으로 만들기는 처음이다. “그냥 세상을 뜨면 허전할 것 같아서요. 민요계를 대표해 이것만은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가 잘 부르는 ‘이별가’ 중에 “모란봉이 변하여 대동강이 될지라도 너와 나의 정인이면 언제든지 변치말자”라는 대목이 있다. 그의 정인(情人)은 분명 우리 가락일 터. 그를 최고 스타로 올려놓은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는 받치어 무엇 하나. (…)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태평가’)가 입에 맴돌았다.

박정호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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