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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교감 '페리 보따리' 뭐 들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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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28일 오후 일본 요코다 (橫田) 공항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뒤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북한에 들어간 첫번째 특사였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페리 조정관이 김정일 (金正日) 총비서 및 그 측근과 군부인사들을 직접 접촉하고 북한현실을 파악하는 등 당초 기대한 방북성과를 충분히 거두었다" 고 평가했다.

페리 조정관은 3박4일 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김정일 앞으로 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친서를 국가수반인 김영남 (金永南)에게 전달했다.

또 강석주 (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 등을 상대로 한.미.일 3국이 마련한 대북 포괄접근방안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정부 관계자는 페리 조정관이 평양을 떠나기 전 김정일 총비서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자리에서 상당한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 전하고 있다.

물론 이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도 강석주와 핵.미사일 문제 등을 놓고 3일 연속 회담한 내용은 김정일에게 곧바로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3국의 입장이 분명히 전달됐으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페리 방북을 전후해 북.미관계도 미 국무부가 금창리 핵의혹이 현재로선 근거없음을 서둘러 발표하는 등 훈풍이 돌고 있다.

미 국무부는 27일 (미국시간) "금창리 조사 결과 대규모 빈 터널들을 가진 미완성 장소만을 발견했다" 고 밝혔다.

특히 페리가 평양을 떠나기 직전 이같은 발표가 나온 것은 향후 '페리 보고서' 작성때 핵의혹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앞으로 미국은 금창리 조사를 대가로 한 60만t의 식량지원과 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른 경수로 건설.중유공급 등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또 한.미.일 고위급 정책협의회의 좌장격인 페리 조정관의 맞상대로 강석주 제1부상이 떠오른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북.미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낸 외교통이나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 이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페리 방북을 계기로 한.미.일 3국의 대북 포괄접근방안을 논의할 북한쪽 채널이 마련됐다" 며 강석주를 지목했다.

북한이 페리를 귀빈으로 융숭하게 환대하긴 했지만 원체 종잡을 수 없는 북한인 만큼 향후의 태도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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