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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을 잡아챈 순간 모델 하우스는 갤러리가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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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호 31면

①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여러 공간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선인장 밭 아래에는 어린이 놀이방 등이 있다. ②공기주머니 안에 설치한 조명이 건물 외벽을 밝힌다. ③공연장인 그랜드홀 앞 공간. 바닥·벽·의자·계단을 오렌지 색으로 치장했다. ④고객 상담 사무실. 신동연 기자

거대한 네온 동심원을 주제로 한 크링. 두 동강 난 건물 사이에 숲이 자라나는 푸르지오 밸리. 경사진 정원 위에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자이 갤러리. 지난 몇 년 우리 도심에 등장한 건축의 스펙터클이다. 예전에 모델 하우스라 불렀던 이곳을 지금은 ‘주택문화관’을 넘어 ‘갤러리’라 부른다. 미술 전시장은 물론 영화관, 공연장, 어린이 놀이방, 요리강습실이 준비돼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등장한 대형 건설사들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아파트가 브랜드이기 위해서는 단지 집만 팔아서는 안 된다. 주택문화관은 바로 라이프 스타일과 고급 문화를 파는 소비공간이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19> 부산 연산 자이 갤러리

눈에 잘 띌수록 좋은 주택문화관은 얼핏 건축가들의 놀이터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건축가가 감당하기에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 중 하나다. 유행에 민감한 건축은 그에 맞추어 빨리 설계하고 빨리 지어야 하고 수시로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가볍고 즐거운 것은 좋지만 싸구려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건축가는 촉박한 시한과 다양한 시간의 리듬을 감당해야 한다. 고급 문화는 전통적으로 안정감과 권위, 영속성을 전제한다. 반면에 소비문화는 패션의 가변성을 전제로 끝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긴 시간을 전제로 하는 고급 문화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소비문화, 모순된 이 두 개의 리듬을 건축이 동시에 장악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시간과 다투기도 하고 시간과 함께 놀기도 하는 주택문화관, 연산 자이 갤러리는 이 시간의 게임에서 뛰어난 선수다.

임시 공간이지만 오랜 시간 공들인 정교함
서울의 주택문화관들과 마찬가지로 자이 갤러리는 부산시 연산동 큰 길에서 놓칠 수 없는 건물이다. 눈에 확 띄지만 그렇다고 외관이 화려한 건물은 아니다. 밖에서는 크게 두 덩어리로 보인다. 길과 연결된 저층부의 경사진 벽면에는 자연 식생이 자라는 블록을 입혔다. 건물의 벽을 잔디 밭으로 만든 것이다. 자이 갤러리의 상층부는 ETFE 불소수지 공기 주머니로 마감했다. 넓적한 풍선 덩어리가 공중에 떠있는 모습이다. 공기 주머니 안에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는 은은한 발광체가 된다. 풍선 덩어리의 모서리에 과감하게 각을 쳤다. 경사진 천장과 기단부에서 올라오는 넓은 계단이 만나 입을 크게 벌린 진입 공간이 만들어진다.

건물에 들어가면 거대한 로비와 바로 마주서게 된다. 로비 공간은 커다란 동굴에 비유할 수 있다. 자연 지형처럼 언덕과 계곡이 있고 천장도 여기저기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동굴처럼 어둡거나 음습하지 않다. 밝고 환하고 매끈하다. 입구 오른쪽 경사면에는 선인장 밭과 작은 원형 돌기들이 반복되는 인공 폭포가 있다. 그 아래에 어린이 놀이방과 에어로빅실이 있다. 왼쪽에는 계단식 객석과 선인장 밭이 서로 어긋난 각도로 만난다. 두 경사면이 서로 교차하며 생기는 삼각형 입구로 들어가면 녹색 강의실과 요리 강습실이 배치돼 있다.

오렌지와 초록의 원색적인 언덕을 오르내린다. 공간, 빛과 색의 탐험 여행이다. 위로, 옆으로, 아래로, 뒤로 돌아서면 예기치 않는 풍경이 펼쳐진다. 사선들이 어우러지다 보니 평평한 천장과 바닥까지도 기울어 보이는 착시 효과가 일어난다. 건축가의 표현처럼 ‘입체파 언덕’과 ‘입체파 구름’이라 부를 만하다. 조경가 박윤진의 표현처럼 자이 갤러리는 ‘도시의 지형’이다. 벽·바닥·지붕이 만드는 전통적인 건물의 모습이 아니라 지형지세가 있는 풍경이다.

우리를 매혹하는 자이 갤러리의 형태는 다양한 시간이 만드는 풍경이다. 자이 갤러리의 첫 번째 시간은 건물 자체의 수명이다. 건축가는 이 건물의 수명을 20년 정도로 설정했다고 한다. 가벼운 재료와 구조의 선택이 여기에 적합하다. 가설 건물을 마치 천년만년 지속될 것처럼 설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건축가가 이 건물의 설계에 투입한 시간이다. 자이 갤러리는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설계한 건물이다. 경사면이 많은 건물은 설비와 조명이 어렵고, 천장 높이를 사람의 키에 맞추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기 일쑤다. 하지만 자이 갤러리의 풍경은 매끈하고 정교하다. 공사는 빨리 하더라도 충분한 설계 기간을 확보했던 것은 건축가로서 조민석의 탁월한 능력이다.

세 번째는 건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상의 리듬이다. 살림집이 오래 머무는 시간의 공간이라면 자이 갤러리는 움직여 다니는 구경꾼들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크게 두 종류의 구경꾼이 있다. 아파트 분양이 뜨거울 때 모이는 인파와 문화시설을 사용하는 자이 주민과 시민들이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순간을 위해 큰 공간이 필요한데 이러한 도시의 지형은 많은 사람의 움직임을 잘 수용한다. 방문객들이 분방하게 움직이고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을 때 자이 갤러리는 즐거운 공간이다. 그러나 대중이 떠나고 선망의 대상이 화석화됐을 때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와 같이 슬픔이 엄습한다. 워홀의 이미지들은 슬픔을 밝은 원색으로 각인시켜준다. 춤과 노래가 멈추는 순간 공허해지기 때문에 대중 소비문화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리를 낸다. 그래야 영원한 젊음과 행복의 환상을 제공해줄 수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리내는 대중문화
아파트 분양권을 꿈꾸는 인파와 문화생활을 즐기러 온 시민들이 빠져 나간 자이 갤러리. 그 원색적인 도시 지형은 사람이 빠져나간 공허함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그 공허함의 이미지 자체다. 자이 갤러리에 끌어들여 온 폭포·선인장·대나무는 자연을 연상시키지만 그것은 결코 자연이 아니다. 자이 갤러리의 도시 지형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게 하기보다 이곳이 인공임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인공으로 끌어들인 선인장·대나무·수호초들은 매년 죽는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매년 새로 심는 선인장과 외벽에 시들해진 화초들은 자연이 저 멀리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19세기 독일 철학가들은 건축을 “정지된 음악”이라고 부르곤 했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변하지 않는 형체로 응집한 것이 건축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수명을 수십 배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들어 매는 건축. 시간을 멈추게 했던 건축의 마력을 21세기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가? 역으로 건축은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문화의 논리에 따라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즐거울 수 있는가? 건축에 즐거움이 있다면 건축을 하는 행위와 그 안에 담겨 있는 일상에 있는 것이다. 조민석은 새로움을 추구하고 즐겁게 건축을 한다. 그리고 자이 갤러리가 즐거운 일상을 담아내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그 건물의 형태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즐거운 사람들이 빠진 정지된 자이 갤러리의 풍경, 그것은 슬픔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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