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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으로 보는 세상

돌아오지 않는 연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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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대부분이 상록 바늘잎나무로 이뤄진 숲이라 가을이 와도 우리나라처럼 산을 온통 물들이는 단풍의 절경을 감상할 수 없다. 대신 침엽수 숲 속을 흐르는 강과 개울에선 색다른 장관을 볼 수 있다. 연어의 회귀가 그것이다. 연어는 건강한 생명과 행복의 상징이다. 개울물을 거슬러 힘차게 상류로 올라가는 연어는 살아 있는 생명이 가장 경이롭게 표현된 모습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연어의 회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생명의 환희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연어를 주식으로 삼았던 원주민들에게 회귀하는 연어는 행복의 상징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민물의 좁은 공간에 만족하지 않고 먼바다로 나갔다가 태평양을 거의 횡단하고 돌아오는 대장정을 펼치는 모험가 스타일의 삶을 산다. 민물에서 겨우 사람 손가락 크기로 자랐을 때 자기보다 수백 배 더 큰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바다로 나간다.

연어는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어난 환경 적응 능력을 발달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종족 번식을 위한 전략은 그 같은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산란한 알이 새끼연어로 부화해 바다로 나갔다가 모천으로 돌아와 다시 산란할 확률은 300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매우 낮은 생존확률 때문에 암컷연어는 한 마리의 성공적 회귀를 기대하며 한번에 3000개 이상의 알을 낳는다. 또한 연어는 모두 한꺼번에 바다로 나갔다가 한꺼번에 회귀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3~4년에 걸쳐 회귀를 분산시켜 모천에서 일어날지 모를 자연재해에 대비한다. 화산폭발이나 산사태로 산란개울이 파괴돼 한해의 산란이 모두 실패하더라도 바다에 체류하고 있던 나머지 연어들이 다음해에 회귀해 다시 산란을 시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민물과 바다를 오고 가는 위험한 삶을 살면서도 산란과 부화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환경 적응 능력이 뛰어난 연어도 현재 북미의 많은 산란하천에서 절멸 위기를 맞고 있다. 캐나다 해안가에 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 말에 의하면 자신들의 할아버지 때만 해도 산란하고 죽은 연어들의 사체를 밟고 가면 신발을 적시지 않고도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 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인왕산 호랑이처럼 전설로 남아 있을 뿐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전적으로 야생연어에 의존해왔던 이곳의 연어 어획고도 이제 반 이상이 양식연어로 충당되고 있다. 북미 대서양 연안에서는 연어가 멸종위기에 처한 종으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연어가 사라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산란개울에서 연어의 서식 환경이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란 하천 주변에서 산림 벌채, 도시화나 산업화로 인한 수질 오염, 댐 건설, 굽이치며 휘돌아가던 물길을 직선으로 만들어 여울과 소(沼)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주원인이다. 적응할 틈을 주지 않고 급속히, 그리고 과격하게 진행되는 이 같은 변화에는 아무리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연어도 감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현재 직면해 있는 현실도 연어가 처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오늘날 기상 변화, 물 부족, 멸종, 마시는 물과 공기의 오염과 같은 위태로운 환경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주변의 숲.강.갯벌.바다는 연어의 모천과 같은 존재로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연어의 모천이 파괴되면 연어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 숲.강.갯벌.바다가 사라지거나 오염되면 우리 사회로부터 건강과 행복이 사라진다. 연어를 강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은 어획고를 올리기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건강과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탁광일 생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