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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지원 헛돈다 下] 개선책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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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벤처산업은 '벤처' 라는 말 자체의 뜻처럼 민간자본의 모험적 투자로 꾸려지는 것이다.

어떤 사업이 유망하다고 판단되면 '벤처 캐피털' 로 불리는 벤처창업 투자회사나 '엔젤' 이라는 별명의 개인투자자들이 뛰어든다.

큰 수익을 챙길 수도 있고, 돈을 날릴 수도 있다.

기업에 빚을 지우는 융자 형태의, 그것도 정부가 주도하는 우리의 지원방식은 기본방향부터 어긋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벤처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 몇 안되는 창업투자회사 대부분이 운영난을 겪고 있으며 엔젤도 걸음마 단계다.

IMF 대량실업으로 고용창출이 급박한 사정도 있다.

그렇더라도 국가예산을 이용한 돈 빌려주기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방식은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제도적 지원쪽으로 빨리 전환돼야 한다는 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제안 몇 가지를 살펴본다.

◇ 민관 (民官) 펀드 구성 = 민간주도 투자로 가는 중간형태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다.

벤처기업협회 유용호 기획조정실장은 "정부가 일부를 출자하는 기금이므로 신뢰성이 커 민간투자 유도효과가 클 것" 이라고 말했다.

동양창투사 민병준 팀장도 "민관펀드로 확보된 자금이 벤처캐피털에 공급돼 다시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되는 순환이 거듭되면 정부의 역할이 저절로 줄어들게 마련" 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 가 그같은 사례다.

요즈마란 '독창적 창업력' 을 뜻하는 히브리어. 92년부터 정부가 40%를 출자하고 민자 60%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해 유망 벤처기업들에 투자해 왔다.

실험적 형태로 주목됐던 이 펀드는 4년만에 투자수익을 포함해 2억달러로 불어났으며 자금을 받은 기업중 일부가 미국의 나스닥 시장에 직상장되는 큰 수확을 거뒀다.

국내에서도 최근 정통부.중기청이 각기 1천억원 규모의 민관펀드 구성을 추진하는 등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아직은 크게 미흡하다.

이와 함께 코스닥시장과 기업 인수.합병 (M&A) 시장도 더 활성화돼야 민간자본의 큰 흐름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투자 판단기준 제공 = 민자유치를 늘리려면 기업들에 관한 정확한 정보와 평가를 공개해 투자자들에게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체제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기술신용보증기금 (技保) 내 기술평가센터 등 기술성.사업성을 가늠하는 전문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평가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것. 지난 3월 기보 주도로 구성된 '기보 엔젤클럽' 은 초기단계 엔젤 육성책의 좋은 예다.

기보측이 투자대상 기업들의 기술력과 사업성을 먼저 평가해 우수기업을 고른 뒤 회원과 벤처 캐피털을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개최,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시켜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업정보 부족과 그에 따른 위험부담 등 엔젤들의 고민을 상당 부분 해결해줘 보다 많은 투자를 이끌어낸다는 게 목표다.

실제로 첫 투자설명회에서 디지털통신기기업체인 ㈜INT텔레콤이 개인과 창투사로부터 무려 23억원의 자본을 유치했고 오디오 생산업체 ㈜하빈도 2억원을 끌어들였다.

기보의 장상돈 차장은 "10여개의 엔젤클럽과 기업평가전문기관들간 정보교류가 잘 되면 투자 활성화에 큰 힘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 자금지원체제 개선 = 벤처투자의 시스템이 바뀔 때까지는 현재의 정책자금 지원체계를 개선해 운용해야 한다.

관리인력 부족과 부처간 정보교류 부재 등으로 그나마의 효과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협회 김선홍 연구기획실장은 "담당 전문인력을 대폭 늘려 사전심사 단계부터 꼼꼼히 실사를 하고, 중복대출 등 제도악용을 막기 위해 각부처에 분산된 지원업무를 총괄 조정할 컨트롤 타워도 둬야 한다" 고 말했다.

국회 산자위 안재홍 (安在烘.한나라당) 의원은 "자금대출시 기보의 기술력 보증범위와 한도액을 확대해 기업의 담보부담도 낮추자" 고 제안했다.

또 지금처럼 1회성 지원에 그치지 말고 기업의 자금수요에 따른 단계별 지원체계를 갖추자고 그는 말한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벤처 브로커들과 일부 관련기관 사람들의 결탁행위를 당국이 지속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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