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직접 소주 폭탄주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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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시·도지사들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만찬을 했다. 유럽 출장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을 빼곤 전원이 참석했다. 세종시 문제와 행정구역 통합 등 민감한 화두들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현안에 대해선 철저히 말을 아꼈고,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이 대통령은 만찬 초반부터 “내가 워낙 시·도지사들을 격의 없이 대하니 박형준 정무수석이 ‘민감한 말씀을 많이 하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더라”고 분위기를 잡았다. 이 대통령은 ‘김문수 경기지사… 허남식 부산시장…’이라며 15개 광역 시·도지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특히 최근 투표율 미달로 주민 소환 위기에서 벗어난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게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라면서 "투표에서 당선되는 것은 봤지만 투표를 안 해 당선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농담도 했다. 그러곤 “연초부터 각 시·도가 예산집행을 열심히 해줘 한국이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서 세계의 모범이 됐다”며 “모두가 여러분 덕분이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시·도지사 대부분은 일부 조사에서 50%를 돌파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거론하며 “대통령께서 잘 하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내가 출입기자들에게 ‘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느냐’고 물으니 4대 강 살리기와 외교 문제, 또 재정을 조기 집행해 경제를 살렸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덕담을 하자, 이 대통령은 “여러분들이 모두 합심해서 일한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호남 지역의 한 단체장은 “대통령은 수석들의 얼굴을 잘 봐야 한다. 수석들 얼굴에 핏기가 없으면 피곤한 것이다. 대통령이 한 시간 일하려면 참모들은 몇 배를 더 일해야 하는데, 참모들의 얼굴에 핏기가 없을 정도면 대통령이 일정을 줄여야 한다”고 고언을 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지금은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이라 발상도, 일도 전대미문식으로 해야 한다. 지금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은 (피곤해도)어쩔 수 없다”고 말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는 후문이다.

2시간30분간 진행된 만찬에선 소주 폭탄주가 세 잔 돌았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세종시 문제로 최근 격하게 대립했던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완구 충남지사의 러브샷 장면이다. 세종시에 반대하는 김 지사가 최근 “세종시는 상식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말하자 이 지사는 “김 지사는 도지사직에나 충실하라”고 맞불을 놓으며 티격태격한 바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소주+맥주 폭탄주를 만들어 “두 분은 서로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폭탄주를 함께 드시면서 앙금을 푸시라”고 제안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이문동의 시장을 방문했더니 풀빵 파는 아주머니도 ‘300만원을 소액대출받고 나니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더라”며 “경제가 어려울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종시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행정구역 통합에 대해선 김태환 제주지사가 “제주도는 3년 전에 3개 시·군을 통합했는데 해보니 효과가 크더라”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한편 이완구 충남지사는 만찬 뒤 한 시간 동안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정무수석을 따로 만나 세종시 문제에 대한 충남 지역의 여론을 전하기도 했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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