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용철 '싸늘한 이마'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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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어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 새파란 불 붙어있는 린광.

깜한 귀또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 박용철 (朴龍喆.1904~1938) '싸늘한 이마' 중

나는 50년대 중반 시인의 미망인 임정희여사와 함께 그의 무덤에 가서 복숭아를 먹은 적이 있다.

그는 김영랑의 권유로 '시문학' 을 창간했는데 시와 시 번역의 활동 10년 미만에 세상을 떠났다.

널리 알려진 작품이야 '떠나는 배' 이건만 나는 그것보다 차라리 '싸늘한 이마' 를 내세운다.

어둠과 불빛이 있고 고독이 있다.

도쿄시절 키에르케고르에 심취되었는데 이 시도 그런 우수가 제법 서려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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