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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살리려면 어떻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투자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놓고는 생각이 다 다르다.

가장 낙관적인 견해는 '저금리 효과론' 이다. 거품 걱정할 것 없이 저금리 정책을 지키며 기다리면 투자는 자연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조동철 (曺東徹). (KDI연구위원) 박사는 "올해 투자증가율은 예상보다 높아져 10%수준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소비가 살아나고 금융 활황으로 자금조달 비용이 싸지면 기업들은 돈벌이를 찾아 알아서 투자한다" 고 내다본다.

저금리 상황에서 증시로 몰리는 돈이 결국은 기업 부문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저금리만 유지하고 있으면 별다른 방책을 쓰지 않아도 곧 투자가 살아나리라는 얘기다.

황민 (黃敏) 신한종합연구소 금융실장은 "기다리면 된다" 가 아니라 "기다리는 수밖에 무슨 방도가 있느냐" 쪽이다. 다만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며 기다려야한다는 조건을 단다. 그러나 역시 대세는 낙관론보다 경계론.불안론이다.

요즘 여건의 '속내' 를 자세히 뜯어보면 본격적 투자 회생을 쉽게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들리는 불안론은 "그간 투자를 주도 (총투자의 90%) 해 온 대기업들이 과잉설비 처리하랴, 부채비율 줄이랴 정신이 없는데 무슨 신규투자냐" 다.

이한구 (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장은 "지금은 대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고 말한다.

그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연말까지 부채 비율 2백%를 맞추어야 하는 상황인데 무슨 투자냐고 반문한다.

신규투자를 하면서 부채비율을 맞추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기업은 구조조정을 빨리 마무리짓되 ▶그러려면 금융기관이 알아서 기업의 부채비율을 관리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오석 (玄旿錫) 재경부 경제정책국장도 구조조정을 강조하지만 구체적 방법을 놓고 의견이 크게 다르다.

그도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대기업의 투자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투자를 이야기하기 전에 신속한 구조조정부터 해야한다" 고 지적한다.

지금이 구조조정의 적기 (適期) 며 지금 기회를 놓치면 '지속적 성장' 의 기반을 구축할 기회도 놓치고만다는 것이다.

어쨌든 대기업의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투자활성화를 기대하는 쪽은 지식기반산업 중심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다.

이와 관련, 온기운 (溫基云)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지역별로 특성화된 대대적인 중소기업의 투자활성화 지원책과 함께 창업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고 주장한다.

엄기웅 (嚴基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더 구체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해 생긴 이익을 재투자할 때는 세금감면이나 과세유예를 해주는 방안과 함께 투자세액공제제도를 연장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급하다" 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은 만만치 않다. "그간 총투자의 10% 수준이던 중소기업 투자가 살아난들 전체 성장을 지탱할 만큼 되겠는가" "지식기반산업의 육성이 하루아침에 될 일이냐" 는 것이 요지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경제의 '30년 성장' 을 주도해 온 대기업의 투자가 움직이지 않고서는 내년의 건실한 성장을 보장할 수 없고 성장 기반의 침식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전경련 등 재계는 이에 대해 "구조조정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고 말한다.

투자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기업에 대한 획일적 구조조정 요구' 라는 지적이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빅딜' 을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설비와 인원을 마음대로 줄일 수 없도록 묶여있는 사업교환은 올바른 구조조정이 아니라는 재계의 지적은 귀 기울일만하다.

또 재벌들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6대 그룹 이하를 종전의 30대 그룹으로 한데 묶어 규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졌으니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를 통째로 고치지 못하겠거든 5대 그룹만 규제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내년 투자에 대한 낙관론이든 경계론이든 "투자가 살아야 성장의 뒷심이 생긴다" 는 데에는 다들 이론이 없다.

결국 정부와 재계가 서로 믿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똑같은 결론을 놓고 한쪽은 "구조조정부터 하라" 고 다그치고 있고 다른 쪽은 "구조조정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할테니 축소지향적이고 획일적인 정책을 바꾸어 달라" 고 요구하고 있다.

투자회복은 정부와 재계의 '신뢰회복' 에서 시작될 것이다.

경제부.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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