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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곡 멋대로 샘플링·리메이크 '저작권 나몰라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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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인기가수 박상민은 최근 지난달 중순 발표한 6번째 음반 '폭풍' 의 초판CD 1만5천장을 거둬들여 다시 찍는 곤혹을 치렀다.

일본의 인기 싱어송라이터 구와타가 '폭풍' 에 수록된 곡 '엘리 마이 러브' 가 무단 사용됐다며 강력 항의를 해왔기 때문. 구와타는 지난달말 박상민측에 "사전에 사용허락을 받지않고 리메이크를 했으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 고 통고했고 문제의 확대를 두려워한 박상민은 시중에 풀린 음반을 전량 회수해 문제가 된 '엘리…' 를 빼고 재출시했다.

'엘리…' 는 79년 구와타가 발표한 빅히트곡 '이도시노 에리 (에리의 사랑)' 을 번안한 곡. 지난해 말 저작권 계약을 거쳐 삼성영상사업단의 영화 '약속' 사운드트랙에 박상민 노래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며 이번에 박상민 본인의 독집에 다시 실렸다.

문제는 재수록. 한국에서는 음반사가 작곡자에게 저작료를 한번 지불하면 다른 음반에도 이 곡을 수록할 수 있고 작곡자에게는 음반이 팔릴 때마다 일정 수익 (로얄티) 만 주면 된다.

그러나 일본을 포함한 국제 관례는 음반사가 다른 음반에 곡을 수록하려면 재차 작곡자로부터 사용허락을 받고 저작료도 지불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이런 국제 관례를 따르지 않아 일어난 해프닝. 이 어이없는 사건은 허술하고 안이한 국내 가요계의 저작권 인식수준을 드러내는 한 실례로 지목된다.

음반시장이 갈수록 국제화되는 상황에서 일정한 액수만 지불하면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알았던 가요계 관행이 음반마다 엄격하게 저작권을 따지는 국제적 접근방식과 마찰을 빚고 있음에도 가요계는 이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최근 가요계에 급증하고있는 샘플링송 (팝송.클래식의 일부를 배경음으로 반복삽입하는 곡) 은 겉으로는 원작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것으로 돼있으나 실제로는 무단사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가요계의 중론이다.

외국곡의 저작권 관리사인 워너채플 뮤직코리아의 조규철씨는 "최근에만도 팝송을 샘플링한 가요 7곡이 사용허가 없이 출시돼 배상을 받아냈거나 협상중에 있다" 고 밝혔다.

이중에는 기발한 샘플링으로 인기를 모은 힙합스타 조PD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EMI퍼블리싱 홍성태 과장도 "해리 닐슨의 '위다웃 유' 를 리메이크한 여가수 에스더의 기획사는 사용허가를 받지않고 음반을 낸 뒤 흥행부진을 이유로 배상요구에 불응했고, 댄스그룹 팬클럽의 노래 '꿈을 찾아서' 는 영국그룹 첨바왐바의 '텁덤핑' 에서 음정을 '차용' 한 것이 분명한데도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국내 저작권법은 원곡을 무단사용한 음반 제작자에게 형사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있다.

동시에 민사상으로도 명예훼손에 따른 위로금 지급.판매중지 가처분 같은 제재를 받게돼 제작자는 큰 곤란을 겪게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내 가요계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 워너채플 조규철씨는 "한국 내에서 저작권 침해 사건 상당수는 제작자의 고의라기 보다 무지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며 "이를 감안해 법정보다는 타협을 통해 배상을 받아내고 있다" 고 말했다.

강찬호.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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