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때 미아된 20대, 최면술로 어릴적 기억 되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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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7일 오후 서울종로구 종로5가 대한심리연구소. 소장 유한평 (柳漢平.62) 박사와 마주 앉은 김영준 (金永俊.26.서울 광진구 구의동) 씨는 柳박사의 최면시술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영민…영민이요. 김영민입니다. " 金씨는 시술 시작 두 시간여 만에 자신의 본명이 영준이 아니라 영민임을 기억해냈다. 20여년 만에 되찾은 이름이다.

金씨가 柳박사로부터 어린 시절 기억을 찾기 위한 최면시술을 받은 것은 지난달 23일 1차 시술 이후 이번이 세번째. 세 차례의 최면요법을 통해 金씨는 자신의 본명 이외에도 서울서대문구홍은동에 자신의 집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어머니의 대체적인 얼굴 특징 등을 기억해 냈다.

金씨는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랐다. 가족에 관한 기억은 다섯 살 때 삼촌을 따라 극장에 갔다가 삼촌을 잃어버린 것이 마지막이다. 혈혈단신 세상에 내던져진 그는 서울 소년의 집을 거쳐 부산 소년의 집에서 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년의 집을 뛰쳐나왔다.

전국을 떠돌면서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자란 金씨는 성년이 되자 자신이 직접 호적을 만들었다. 5년 전부터는 서울의 한 볼링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어깨 너머로 배운 볼링 솜씨를 인정받아 지금은 프로선수로 데뷔하기 위해 맹훈련 중이다.

"2년 전부터 가족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저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는데다 서울 서대문구 일대를 수십번이나 직접 뒤졌지만 별 소용이 없었어요. " 金씨는 97년 柳박사가 출연한 한 TV프로그램을 보고 柳박사를 알게 됐다.

현재 대한최면심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柳박사는 78년 부산 효주양 납치 사건 때 목격자에게 최면을 걸어 범인이 이용한 차량번호를 기억해내게 해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적이 있는 국내 최면심리학의 권위자.

지난달 연구소로 찾아온 金씨로부터 애타는 사연을 들은 柳박사는 "최면을 통해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가족을 찾는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도 있을 것" 이라며 무료시술을 자청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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