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생산적 논쟁' 실패한 檢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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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간 다툼을 지켜보면 어이없는 대목이 있다. 수사권 독립이란 표현만 같을 뿐 양측이 얘기하는 알맹이는 완전히 다른 탓이다.

경찰이 얘기하는 수사권 독립이란 교통사고.폭력 등과 같은 경미한 사건에 대한 '수사종결권' 을 뜻한다고 한다. 영장청구권을 얻어내거나 검찰로부터의 수사지휘권 탈피는 언감생심 (焉敢生心) , 꿈도 꾸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7일 검찰이 반박자료를 통해 밝힌 수사권 독립은 훨씬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경찰이 모든 사건에 대한 수사종결권은 물론 검사의 수사지휘권 배제와 더 나아가 영장청구권까지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고 검찰은 전제했다. 이런 가설 (假說) 위에 검찰은 "경찰이 형사소송 구조의 근간을 흔들려 하고 있다" 고 질타했다.

이에 대한 경찰측 반응은 한마디로 '황당하다' 였다. 검찰이 경찰 주장을 확대 해석, 여론몰이에 나섰다고 볼멘 표정이다.

외국사례에 대한 양쪽의 아전인수 (我田引水) 식 해석도 꼴불견이다. 유럽과 일본의 사법제도를 거론하며 경찰과 검찰은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 이야기만 했다.

이런 희비극은 '공론화' 의 실종에서 나온 듯하다. 경찰은 사실상 이해당사자인 검찰을 쏙 빼놓고 정치권과의 무대 뒤 대화를 통해 수사권 독립을 얻어내려 했다.

검찰에도 경찰쪽 주장을 경청하려는 태도가 전혀 없다. 더 나아가 계속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면 경찰의 '즉결심판권' 을 환수하고 사법경찰을 법무부 직속으로 할 용의가 있다고 반격했다. 줬던 떡까지 빼앗겠다는 식이다.

해묵은 수사권 독립논쟁의 목표가 국민의 '인권보호' 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찰은 처음부터 검찰과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검찰도 수사권 독립 논의가 이왕 불거진 바엔 경찰쪽 목소리를 들어보는 아량을 보이는 게 '형님' 다운 태도일 것이다.

수사권 독립 논쟁이 '밥그릇 싸움' 으로 비춰지기 싫다면 이제라도 검찰과 경찰은 진지한 논의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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