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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대통령’ 사르코지 프랑스 30년 숙원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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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프랑스의 30년 숙원사업이 최근 이뤄졌다. 자국의 라팔 전투기 36대를 브라질에 팔기로 한 것이다. 1976년 제작 계획을 수립한 뒤 33년 만의 첫 수출이다. 프랑스는 그동안 세계 시장에 라팔을 들고 나왔지만 네 번이나 미국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번 결과를 만들어낸 건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대통령의 격식을 따지지 않는 실용주의와 스킨십 외교였다. 현지 언론은 ‘사르코지 개인의 승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룰라와 10여 차례 ‘휴대전화 회담’=이번 브라질 전투기 입찰에는 3국이 경쟁했다. 미국 보잉사의 수퍼호넷(F/A-18E/F) 기종과 스웨덴 사브사의 그리펜 NG,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등이었다.

경제위기 이후 각국이 일자리 창출과 경기 부양에 골몰하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경쟁은 치열했다. 프랑스 협상단이 5일 브라질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전망은 밝지 않았다. 일간 파리지앵에 따르면 고비가 된 6일 마라톤 협상 당시 사르코지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개인 전화로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특유의 편한 말투로 친구처럼 부탁하면서 기술 이전 문제 등 구체적인 계약 조건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르코지와 룰라 두 대통령이 실무자처럼 직접 협상을 한 것이다. 엘리제 측에 따르면 같은 시각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룰라 대통령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룰라의 마음은 이미 사르코지 쪽으로 기운 뒤였다.

사르코지는 지난해 금융위기 당시에도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차례 ‘휴대전화 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 회담을 전투기 비즈니스에 활용한 것이다.

◆G20을 윈-윈 전략 카드로 활용=사르코지는 지난해 말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도 전투기 구입을 부탁했고 이후 계속 공을 들여왔다. 2007년 취임 후 모로코에서의 전투기 경쟁에서 탈락한 뒤 본인이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것이다. 전략적으로는 브라질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프랑스 경제전략연구소의 크리스티앙 드보시외 부소장은 “힘있는 신흥개발국이 중국과 인도뿐 아니라 브라질도 있다는 점을 사르코지가 나서 전 세계에 대신 홍보해 줬다”고 설명했다. G20이나 G14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때마다 브라질을 거론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룰라로서는 이번 전투기 구입 건을 브라질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활용했고 기술 이전 약속까지 받아내 손해볼 게 없는 장사가 됐다. 사르코지 역시 역사적인 첫 전투기 수출의 주역이 됐고, 당장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얻게 됐다.

사르코지는 룰라가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라는 점을 열쇠로 활용했다. 전투기 거래는 규모가 커서 국제사회의 상식이나 선례를 따르지 않는 건 최종 결정권자로서도 쉽지 않다. 그래서 국가 간 거래가 없던 라팔을 택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라팔이 번번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르코지는 룰라가 높은 지지도를 등에 업고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고 평소 친분이 있는 그를 집중 공략한 것이다.

사르코지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화려한 비즈니스 성과를 올렸다. 리비아의 불가리아 간호사 석방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선 리비아 국가 원수 카다피와 관계를 맺어 항공기 등 100억 유로어치를 팔았다. 알제리에 가서는 식민 지배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석유화학단지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사르코지 대통령의 비즈니스 계약 성과

-브라질(2009년 9월)
라팔 전투기 36대(예정) 약 9조원

-리비아(2007년 12월)
에어버스 항공기 등 약 18조원

-알제리(2007년 12월)
석유화학단지 등 약 4조8500억원
-중국(2007년 11월)
에어버스 항공기 등 약 36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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