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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그 자리 사소한 물건들’ 박연차씨 주장 진위 가려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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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연차(사진)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의 변호인은 최근 재판부에 박 의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 20여 장을 제출했다. 박 의원 측은 왜 사진을 재판부에 낸 것일까.

16일 박 전 회장 등에 대한 선고를 시작으로 ‘박연차 게이트’ 1심 재판이 종착역에 들어서고 있다. 검찰과 피고인들 사이의 진실 공방도 치열해진다. 특히 양복 단추나 신용카드, 넥타이 등 사소해 보이는 물건들이 알리바이와 양측 주장의 진위를 가려줄 수 있는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박 전 회장 등의 진술이 혐의를 입증할 주요 증거로 제시된 데 따른 것이다.

◆양복 단추=박진 의원은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7월 23일 공판에서 “호텔 복도에서 박 의원 양복 안주머니에 돈봉투를 넣어줬다”고 진술한 뒤 박 의원 측 변호인의 요청으로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재판정에서 박 의원이 박 전 회장 앞으로 다가가자 박 전 회장은 “그땐 양복 상의 단추가 모두 열려 있었다”며 박 의원의 단추를 풀었다. 하지만 박 의원은 “호텔 복도에 같이 있은 적도 없고, 저는 항상 양복을 닫고 다닌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박 전 회장은 “그때는 열려 있었다”며 돈봉투를 상의 오른쪽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에 대해 박 의원 변호인은 “박 의원은 사진에 나와 있듯 식사할 때도 습관적으로 양복 단추를 채운다”며 “박 전 회장의 말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정대근 전 농협 회장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대가로 세종캐피탈 측으로부터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가 마무리되던 2006년 초 정 전 회장과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 남경우 전 농협사료 대표가 서울의 한 호텔 일식집에서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 전 회장은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혐의를 인정하겠다”고 맞섰다.

이때 검찰이 꺼낸 것이 정 전 회장의 플래티늄 카드 사용 내역으로 검찰이 지목한 날과 카드가 사용된 날짜가 일치했다. 정 전 회장 측 변호사는 "그날 문제의 식당에 절대 가지 않았다”면서 “식당 직원이 남 전 대표 등의 식사비를 할인해 주기 위해 임의로 정 전 회장의 회원번호를 입력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넥타이=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0달러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부산고검 김종로 검사의 재판에선 ‘넥타이’가 쟁점이 됐다. 박 전 회장은 “그때(2007년 4월 김해 정산CC) 김 검사가 넥타이를 맸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 검사 측 변호인은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이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김 검사를 만나 돈을 줬다는 진술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둥개=2006년 8월 박 전 회장의 초청으로 베트남의 태광비나 사무실에 찾아간 자리에서 5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광재 의원은 “베트남 방문 때 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은 돈봉투를 탁자에 올려 놓은 뒤 사무실 밖으로 나가 마당에서 검둥개를 쓰다듬으며 이 의원을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 사이 이 의원이 돈봉투를 챙겼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반면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이 지어낸 얘기”라며 “당시 사무실 주변에서 검둥개를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문제의 검둥개 사진을 제출한 데 대해 변호인들은 “배경이 뚜렷하지 않아 사진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법 권태형 형사공보판사는 “특정 상황에 관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구체적인 정황 진술이 재판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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