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의 저주'에 BOA-메릴린치 합병 두 주역 몰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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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20면

“리먼 브러더스는 금융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을 뿐이다.”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9월 리먼 파산을 사실상 결정한 장본인이었다. 리먼 파산 1년을 맞아 당시 그의 선택을 놓고 다시 논란이 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리먼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위기 때문에 리먼이 무너졌다는 주장이다.

뒤바뀐 승자·패자들

사뭇 논리적인 그의 주장에는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진실 한 조각이 들어 있다. 리먼의 파산을 막았더라도 다가올 위기를 없앨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본 당시의 생각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리먼이 무너져도 시장이 일시적으로 동요하겠지만 곧 진정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시장의 복원력을 믿었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을 외면한 채 글로벌 시장은 대폭락했다. 주요국 증시의 주가는 2001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0세기 후반 역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대재앙이다. 1907년과 29년에 버금가는 파국(Fiasco)이다. 한 사람(폴슨)의 순간 선택에서 비롯됐다”고 영국 런던정경대학 찰스 굿하트 교수는 리먼 파산 직후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최후의 일요일, 운명적인 결정
월가에서 서너 블록 떨어져 있는 뉴욕연방준비은행.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산하 12개 지역 준비은행 가운데 핵심이다. FRB가 탄생한 1913년 이후 뉴욕 준비은행은 위기 때마다 야전사령부 역할을 했다. 위기의 금융회사를 살리거나 죽이는 일을 담당했다. 위기 순간 월가에 돈의 홍수를 일으키는 일(긴급 자금 투입)도 이곳의 중요한 임무다.

2008년 9월 14일 일요일 오후 뉴욕 준비은행 회의실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폴슨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FRB 의장,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월가 메이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리먼 처리를 놓고 미 정부-월가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폴슨은 리먼을 살리기 위해 정부 돈을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월가 CEO들은 폴슨이 그 순간까지 고집을 부리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리먼 인수에 뜻이 있었던 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영국 바클레이스가 두 손을 든 상황이었다. 리먼의 금고에 있는 ‘독성 폐기물(부실자산)’이 예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남은 길은 월가 금융회사들이 시장 충격을 가능한 한 줄이는 방향으로 리먼을 해부해 나눠 갖는 방법뿐이었다. 이는 미 정부가 부실자산을 맡아 처리해줘야 가능했다.

그런데 폴슨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리먼에 대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말이 나왔다. “리먼이 파산한다고 진행 중인 위기 상황이 특별히 악화될 것 같지 않다. 시장이 (충격을 이겨내고)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순간 뉴욕 준비은행 회의실엔 죽음의 서늘함이 밀려들었다. 현장에 있던 한 CEO는 “폴슨이 불장난을 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의회 설득 힘들어지자 '시장원칙'
리먼 파산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파산 두 달 전인 지난해 7월 리먼 위기는 표면화됐다. 리먼이 모기지 관련 자산을 대량으로 보유했다는 점이 알려지자 월가 금융회사들이 거래 상대의 계약 불이행 리스크(Counterparty Risk)를 두려워하며 리먼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헤지펀드 등이 개설한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제왕적 CEO’로 불린 리처드 풀드가 투자 유치단을 한국과 중동으로 급파했다.

하지만 중동 쪽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한국 산업은행이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가격이 맞지 않았다. 9월 9일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포기한다는 소문이 월가를 강타했다. 리먼 주가가 폭락했다. 실제로 하루 뒤인 10일에는 산업은행 인수 포기가 공식 발표됐다. 헤지펀드 등의 현금 인출이 봇물을 이뤘다. 리먼 경영진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임직원들은 자체 노력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을 직감했다.

그러나 외부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FRB는 너무나 많은 돈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버냉키가 “재무부가 의회를 설득해 (법을 바꾸든 공적자금을 조성하든) 나서야 한다”고 말하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하지만 폴슨은 듣지 않았다. 그는 9월이 되자마자 민영화된 대형 모기지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 맥에 정부 돈을 투입했다. 일부 의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월가의 투기세력을 구제한다고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폴슨은 리먼을 살리자고 의회를 설득할 자신을 잃어버렸다. 한국 산업은행의 인수 포기로 리먼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순간 그는 돌연 ‘시장경제 원칙’을 들고 나왔다. 마치 리먼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동안 스스로 무너뜨린 원칙을 다시 분명히 하려는 듯했다. 가이트너 뉴욕 준비은행 총재가 구제를 강하게 주장했다. 효과가 없었다.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소장은 “폴슨이 ‘시장경제 원칙’을 끌어들여 자신감 상실을 감추려는 듯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현실 모른 투자은행가
폴슨이 후폭풍을 안일하게 판단한 데는 그의 ‘출신 배경’도 한몫했다는 평이다. 그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 회장 출신이다.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 이후 가장 투자은행을 잘 아는 재무장관으로 꼽혔다. 그는 90년대 후반 이후 위상이 추락한 리먼을 무시했다. 시중은행과는 달리 예금을 받지 않으니 리먼이 망한다고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중은행과 보험회사 등이 리먼에 꿔준 돈은 이미 부실자산으로 분류돼 있어 다른 회사의 피해도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시장이 베어스턴스 사태를 계기로 투자은행 파산에 면역을 갖췄다고 봤다.

그러나 리먼의 파산보호 신청 직후 세계 금융시장은 패닉에 휩싸였다. 주가가 폭락했고 신용경색이 신용공황으로 바뀌었다. 각국 중앙은행이 인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 공급했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두려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투자은행을 잘 아는 폴슨이 정작 리먼이 무너졌을 때의 후폭풍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속적인 충격에 약해진 글로벌 시장의 체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폴슨은 위기 한가운데서 늘 일어나기 마련인 정책 담당자의 실수를 되풀이 한 인물이 됐다. 폴슨과 리먼이 금융위기의 진앙으로 꼽히게 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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