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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녀 '더 높아진 문화의 벽' …말도 안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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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부 최승희씨 (38.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는 최근 중학교 아들의 '무성의한 대답' 에 화가 나 아들 녀석을 혼내줬다.

무언가 물을 때마다 아들이 '잘' 또는 '매우 잘' 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에 화가 났던 것. 그러나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고 난 아들은 "애들이 모두 그렇게 말한다" 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성의가 있고 없는게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용어라는 것.

세대간에 감성 차이가 심각하다. 이제 언어.옷 입기.대중문화 등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간 감성 차이는 의사소통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그 간격이 커졌다.

'말밥이지.여물이지 (당연하지)' '뽀렸다 (훔쳤다)' '돈띵깐다 (돈을 유용한다)' '벨튄다 (벨을 누르고 도망친다)' 등 '그들의 용어' 를 단번에 알아듣는 부모 세대는 많지않다.

최근 방영된 TV드라마 '학교' 에서 '쨩 (우두머리)' '학주 (학생주임)' '교주 (교무주임)' '담탱이 (담임)' 같은 용어가 그대로 방송될 정도로 이런 용어는 학생들에게 일반 명사가 됐다.

반면 서울 고명중 2학년 김응철 (14) 군은 '고무를 가져와라' 는 아버지의 말을 한동안 못 알아 들었다. " '고무' 가 '지우개' 를 뜻한다는 것을 아버지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는 것.

언어 뿐 아니다. 주부 박정숙 (41.서울 은평구 응암동) 씨는 중학2년 아들이 친구와 컴퓨터를 보며 나누는 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뭘하냐?" "프로토스한다" "테란해" "초반러시를 없애준다" "방어창은 뭘로 할거야" "포톤케논" "메딕 같이간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며 나누는 대화였던 것.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컴퓨터 화면을 아무리 들여다 보고 있어도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고 朴씨는 고백했다.

기껏해야 벽돌 쌓기 게임인 '테트리스' 나 우주선을 폭파하는 '갤러거' 정도의 게임을 기억하고 있는 부모세대는 이제 게임을 주제로 자녀와 대화를 나누기조차 힘들어진 것. 댄스그룹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다.

최근 한 PC통신의 '주부방' 에는 한 주부가 '어린 댄스 그룹' 을 비꼬는 글을 올렸다. '괜히 카메라를 보고 인상 쓰고 삿대질한다' '한 명이 노래를 시작하면 가창력을 숨겨주기 위해 뒤에 댄서들이 모두 함께 합창을 시작한다' 등 시종일관 비꼬는 투로 요즘 댄스그룹의 특징을 열거한 그 주부는 '음반을 내고 곧 사라진다. 너무 고맙다' 고 글을 맺었다.

주부들에게는 이처럼 못마땅한 댄스 그룹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정확히 그들의 감정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뮤지션' 이다.

이화여고 2년 김세진 (17) 양은 "발라드는 듣는 이를 심각해지게 만들어 잘 안 들어요. 댄스그룹의 음악은 들으면 흥겹고 즐거워요" 라고 말한다. 부모세대의 귀에는 뭐라고 주절대는지 알 수 없는 랩도 이들에게는 잘 들린다.

부모 - 자녀의 패션 감각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옷은 유행 따라 입는 것' 으로 여기는 자녀세대는 "왜 거리를 청소하고 다니느냐" 며 힙합바지에 적나라한 적의를 드러내는 부모의 편견에 답답하기 그지 없다.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한 반에 20명 정도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이들에게는 '배는 곯더라도' 마련해야 할 필수품. '금강산도 식후경' 이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급식비를 아껴 휴대폰을 사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이런 세대 간의 간극을 어떻게 뛰어넘어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서울시 청소년종합상담실 홍지영 상담원은 "엄마와 관계가 좋지못한 상담 청소년이 하루는 '엄마가 우리가 쓰는 말을 썼다' 며 기분 좋아하는 하는 것을 보았다" 고 들려준다.

일단 부모가 이들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그러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거나,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 힙합바지를 입는 등 상황에 어긋날 때는 이를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범하되, 경우는 바르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 감성의 세대격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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