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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염병들 창궐 가능성 높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백만, '명 (名)' 이 아니라 '마리' 였기에 다행이었다.

최근 말레이지아는 원인모를 괴질에 감염된 돼지 1백만 마리를 도살했다.

이 돼지괴질을 불러온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60여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이 21세기 인류보건에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엄청난 인명을 앗아간 흑사병처럼 각종 전염병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13일 (미국시간) 미국립보건원 (NIH)에서 열린 '재 (再) 부상조짐의 전염병' 포럼에서 정근모 한국과학재단이사장.제임스 휴즈 미국립전염병센터소장 등 1백20여명의 한.미 전문가들이 모여 한결같은 '경고' 를 쏟아냈다.

NIH의 리차드 크라우스박사는 "병원균은 국경도 모르고 여권도 없다" 며 "하루 수백만명의 지구촌 여행객을 따라 소리와 맞먹는 속도로 염병균들이 세상을 순회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에이즈의 확산을 예로 들며 수많은 질병들이 비슷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이성우 사회복지협의회부회장은 "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가 93년 다시 출현하더니 지난해 말까지 모두 5천5백여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 밝혔다.

포럼 참석자들은 유행성출혈열.결핵.콜레라 등 잊혀진 것으로 알려진 전염병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의 로버트 월리스교수, NIH의 클립턴 배리박사등은 "꾸준한 항생제 개발에도 불구하고 전염병균은 돌연변이와 나름의 방어기전을 통해 오히려 항생제 내성을 강화해왔다" 고 지적했다.

97년 홍콩 조류독감 인플루엔자는 의학자들도 감히 예상치못한 바이러스의 놀라운 변신결과로 그해 1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 질병관리센터 (CDC) 의 낸시 콕스 박사는 이 독감 인플루엔자의 돌연변이를 조사한 결과 이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그간 포유류간의 전염병 전파는 흔한 예였으나 조류에서 사람 (포유류) 으로 가염된 것은 매우 드문 예. 상당수 기후학자들은 최근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도 전염병 창궐을 불러올 수 있는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의 재창궐은 이미 시작됐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CDC의 미리암 올터박사는 "B형간염 접종 규정이 생긴후 2세미만 아이의 경우 과거 10%이하였던 백신 접종률이 96년 80%를 넘어섰다" 며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가톨릭의대 맹광호교수는 "한국에서는 의사와 보건당국의 무관심으로 전염병 통계가 부실, 대책마련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정이사장은 포럼 기조연설에서 과거 남한에서 사라진 전염병들이 북한에서 창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한미간 전염병 통제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한.미 보건관계자들은 전염병이 이제 특정국가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국가간 공동감시망 및 연구협조 체계 구축을 당국에 건의하기로 했다.

베데스타 (미메릴랜드)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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