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율 빅딜' 달라진 김승연 한화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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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너가 체면과 격식을 고집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절감했습니다. 앞으론 외형에 연연하는 지난 날의 경영행태를 되풀이하지 않을 겁니다. " 14일 대림과의 '자율 빅딜' 을 전격 성사시켜 비상한 관심을 모은 김승연 (金昇淵) 한화회장. 요즘 재계에선 "金회장이 달라졌다" 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한때 그룹이 해체 위기까지 몰린데 대한 책임론과 가족간 불화 등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뿌렸던 그가 최근에는 한화가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거듭나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후면 거의 매일 사무실로 나와 주요 업무를 챙긴다. 지난 주에는 외자유치 협상차 일본을 다녀왔고 대림과의 협상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뛰었다고 한다.

올초엔 '처음으로' 퇴직 임직원들에게 직접 인사말을 쓴 연하장을 보냈고, "나를 도와준 분들에 대한 신의와 의리를 꼭 지키겠다" 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전엔 볼 수 없던 모습이라고 한다.

한화에너지 정유부문. 한화기계베어링. 한화바스프우레탄 등 계열사를 잇따라 파는 등 구조조정 속에서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본사 기자와 만나 지난 1년여 동안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겪었던 심경과 앞으로의 각오 등을 털어놓았다.

대림과의 빅딜에 대해 그는 " '윈 - 윈' 게임이 되기 위해선 양사가 부족한 부문을 보완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 자율적으로 추진했다" 면서 "이번 일이 빅딜을 하면 한쪽이 손해본다는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계열사 매각에 대해 그는 "선대 (先代) 회장께서 애써 일궈놓은 주력사업의 매각결정 때는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는 등 그 착잡한 심경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고 털어놓았다.

또 "아마 마취도 않고 살을 도려낼 때의 고통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면서 "지난해초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 밤낮으로 걸었다. 발에 물집이 생겨 새살이 돋고 다시 물집이 생기고 터지는 것이 1년여 계속됐다" 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옷을 벗어야 했던 임직원에 대해 경영의 최고책임자로서 큰 자책감을 느낀다" 면서도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 고 주문했다.

가장 괴로웠던 일은 한화에너지 매각이라는 것. "지난해 10월께면 마무리될 것으로 생각됐던 정유 매각이 지지부진해 지난달 18일 저녁 현대 정몽혁 (鄭夢爀)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프라자호텔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발씩 양보하자' 고 설득해 극적으로 타결짓게 됐다" 고 털어놓았다.

金회장은 "앞으로는 회사수를 늘리기보단 작지만 주주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아주는 회사, 최선을 다하는 직원에겐 반대급부가 주어지는 회사로 만들도록 하겠다" 고 강조한다.

지난 92년 재산분배 문제를 둘러싸고 법정소송 등 극한상황까지 치달았던 동생 김호연 (金昊淵) 빙그레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때 불협화음을 기억하는 분들께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95년 화해한 뒤 집안 행사나 선친묘소 방문때 반드시 동행하고 어려운 점은 수시로 이야기하는 등 이전의 우애를 되찾았다" 고 말했다.

요즘 그는 인터넷 재미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전 계열사의 부장급 이상 간부들과 직접 E메일을 통해 대화하면서 임직원들의 건의사항을 접수하는 것은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회신까지 해주고 있다는 것.

"요즘 세아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 이라는 그는 "구조조정 와중에서 중단한 등산도 다시 재개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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