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가계부] 1. 자녀들 '용돈장'쓰니 알뜰살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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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각 가정의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바뀌면서 생활비의 씀씀이가 달라지고 있다. 쌀값.반찬 값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는 대신 통신비가 새로운 주요지출 항목으로 등장했고, 현금보다는 신용카드를 통한 지출이 점점 늘고있는 추세다.

새로운 생활양식에 맞춰 가정경제 운용을 새롭게 진단해보는 '다시 쓰는 가계부' 시리즈를 마련한다.

73년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 26권의 가계부를 소장하고 있는 김덕희 (56.서울서초구 서초동) 주부. 김씨의 89년도 가계부에는 '동범 1만5천원, 수정 1만원' 이란 표기가 있다. 당시 고1.중1 두 아이의 용돈을 적어둔 것. 김씨는 "당시로서는 적지않았다" 고 회상한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 용돈 규모도 생활의 규모만큼이나 커졌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최근 조사에 다르면 고2 학생들의 월평균 용돈 규모는 4만3천원선. 대학생들의 경우 월평균 25만~3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건강한' 가계부를 위해서는 아이들 용돈도 관리해야하는 싯점이 된 것이다. 실제 과거에는 '아이가 손을 벌리는 대로' 돈을 주는 가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상당수 가정이 주급, 혹은 월급의 형태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있다.

주부들은 아이들에게 나가는 용돈을 가계부상에 관리하면서 한편으로 아이들 스스로 용돈을 바르게 쓰도록 교육해야하는 중차대한 (?) 임무가 하나 더 추가됐다.

먼저 아이들 용돈은 얼마나 주어야 할까. 물론 가정형편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는 하다.

관계 전문가들은 월평균 용돈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초등학생은 월 5천~1만원, 중학생은 3만원 안팎, 고등학생은 5만원, 대학생은 25만원 정도일 것으로 보고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가정들이 주는 수준에 맞춰 우리 아이에게도 용돈을 지급하면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 문숙재 (文淑才) 교수는 "우선 아이의 용돈으로 어디까지 지출할 것인지를 아이와 상의하고 용돈의 범위를 정하라" 고 조언한다.

가령 용돈으로 자신의 군것질과 간단한 학용품을 사는 정도만 할 것인지, 용돈으로 아이 스스로 자신의 옷까지 사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을 용돈으로 처리하게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라는 것.

文교수는 우리나라 대부분 가정에서 용돈은 '아이들 군것질값.오락비' 개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나머지 부분에 대한 구매, 지출은 부모가 모두 대신해주고있다는 것.

그러나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한편으로 아이가 갖고 싶다는 비싼 옷, 비싼 학용품 등을 부모가 선뜻 부모의 돈으로 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 소비주체로서 훈련받을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용돈에서 의복비까지 지출하기로 아이와 '합의' 했을 경우 가계부상에 '의복비' 로 책정된 금액의 일부를 용돈으로 더해주고 한편으로 아이의 소비 행태를 지켜본다.

충동구매, 과시구매를 하지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잘못된 구매를 해서 적자가 났을 때 즉시 도와주어서는 안된다는 것. '한동안 어려움을 감수하는' 식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바른 훈련이다.

아이들이 용돈 쓰는 능력을 키우는 첩경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용돈 기입장 적기' .엄마의 가계부 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 스스로도 용돈기입장을 적게하는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부터 연습을 시키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 4학년 실과에서는 용돈기입장 적기를 가르치고 있기도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초등학교 학생용 용돈기입장 10만부를 제작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수입항목으로 지난달에서 넘어온 돈.이번 달 용돈.집안 일 돕기 (일손 돕기)가 잡혀있고 지출로는 저축.학용품비.교통비.책 대여료.간식비 (군것질).취미오락비 등으로 짜여져 있다.

PC통신의 한국은행 정보방 (go bok) 내 '공개자료실 - 기타 업무 관련자료' 와 한국은행 홈페이지 (www.bok.or.kr) 를 찾아보면 용돈기입장 적기요령과 지도요령이 자세히 나와있어 참고할만하다.

지난해 소비자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돼 학생들에게 용돈기록장을 꾸준히 적게했던 김포중학교 이애영 (李愛英) 지도교사는 "처음에는 주급으로 주다가 관리능력을 보아가며 월급으로 늘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며 "초기에는 수시로 아이가 용돈기입장을 적는 것을 검토하고 기입장을 잘 썼을 때는 특별보너스를 주는 것도 한 방법" 이라고 권한다.

현재 주부들이 쓰고 있는 가계부에는 따로 용돈 기입항목이 없거나 '남편 용돈' 항목이 있는 정도다.

그러나 따로 항목을 만들지 않더라도 아이에게 지급된 용돈은 가계부상에 잘 표기해 과연 얼마만큼의 용돈이 지급됐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한다.

한국은행 기획부 경제정보실 최재훈씨는 "어렸을 때의 용돈 관리 훈련은 아이의 평생 라이프 스타일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고 말한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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