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가 있는 아침] 김윤배 '햇살, 눈부시게 태어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에미의 자궁을 탈출하는 동안

새끼는 아직 물렁한 뼈와

보이지 않는 눈을 감고 있었다

편안한 잠을 몰고 오던 에미의 숨소리

귓속을 들들거리던 핏물소리

어느 순간 잃어버렸는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물길 위에서 새끼는

최초의 바람소리를 들은 듯하다

- 김윤배 (金潤培.55) '햇살, 눈부시게 태어나다' 중

한 마리의 짐승이 어미의 몸으로부터 태어나는 광경을 서술적으로 그려낸다.

별 기교도 없이 듬성듬성 말을 잇대어 다룬다.

깍두기와 깍두기 썰고 남은 무 한 도막 같이 든든하다.

세상에 나오기 전의 자궁 속과 세상에의 첫 낯선 바가 전생과 금생을 나누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갈 때의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므로 상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의 재미는 한 마리 갓난 짐승이 햇살이라는 것에 있다.

햇살의 생물화!

고은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