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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돈의 뉴욕뉴욕] 그래도 부러운 '기부금 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뉴욕의 한 병원이 기부금 마련을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가 시행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부닥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세계적인 암치료 전문병원으로 SK그룹의 고 (故) 최종현 (崔鍾賢) 회장도 수술을 받았던 슬로언 케터링 병원은 1년반 전부터 '행운의 편지' 를 연상케 하는 기발한 방식으로 기부금을 받아 왔다.

병원측에서 먼저 일반인 몇명에게 암센터 자택요양 프로그램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문과 함께 1인당 10달러씩 보내주도록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각자 10명씩에게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발송,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한다는 내용.

당시 자원봉사 간호사였던 캐럴 파르카스의 제안으로 채택된 이 아이디어는 장안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어 순식간에 80만달러라는 거액의 기부금을 모았다.

더스틴 호프먼.엘리자베스 테일러. 마이클 더글러스 등 인기 영화배우에서부터 론 카우프먼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댄 퀘일 전 부통령 등 전.현직 정치인, 언론계 인사, 디자이너 등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행운의 편지' 를 받지 못하면 사회의 지도층이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그러나 십시일반 (十匙一飯) 의 미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측의 한숨으로 이어졌다.

기부자 신용조회 등 '잔돈' 수표의 현금화 비용이 원금의 20~30%에 이르고, 기부금에 따라붙는 각종 공과금이 만만치 않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던 것. 게다가 공식적으로 기부를 요청할 경우 적어도 수만달러씩 내지 않고는 못배길 저명인사들이 단돈 10달러로 싸게 '막고' 있다는 것도 병원측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소액 기부금 모금의 비경제학은 미국사회의 특성에 따른 해프닝이라고 치자. 만약 한국에서 이런 행운의 편지식 모금 취지서가 배달됐을 경우 과연 이 정도로 공감대를 넓혀갈 수 있었을까. 슬로언 케터링 병원의 실패담은 한국기자의 눈에는 차라리 성공담으로 비친다.

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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