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대북 압박정책 지속돼야 북핵 진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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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최근 “지난 7월 이후 강경 일변도의 북한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6자회담과 핵문제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가 아닌 전술적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남북대화를 포함한 남북관계의 ‘해빙’이 북한의 전략적 변화, 즉 핵문제에 관한 입장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 장관의 발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북한은 지난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폐연료봉 재처리로 추출한 플루토늄을 무기화 중이며, 우라늄 농축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구조화함과 동시에 한국의 통일정책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심각한 문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 강국들이 핵을 가진 통일한국을 반길 리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개발은 핵확산에 대한 위협을 증폭시킴과 동시에 북한의 권력 이양 과정에서 대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도로 높일 수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 모두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철저한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을 비핵화로 유도하는 방법이다. 최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 “김정일 정권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핵문제 해결이 힘들다”라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다. 이는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곧 정권이 바뀔 것이고 그 이후 핵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식의 사고는 북핵 문제에 관한 ‘무시(neglect)’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핵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니 김정일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정책이 되고 만다.

북핵 대응 방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 전략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종료를 선언하고 더 이상의 외교적 노력을 중단할 경우 현 상황의 주도권을 북한에 넘겨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재개하고 핵무기의 숫자를 늘려갈 경우 상황 관리가 무척 힘들어진다. 둘째는 적대적 무시(malign neglect) 전략이다. 경제 및 금융제재를 가해 북한의 정권교체를 기도하는 것이나, 북한의 불안정성과 한·미 양국 주도의 통일을 원치 않는 중국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셋째는 대화를 위한 압박전략이다. 압박을 가하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에 복귀해 핵문제의 진전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안은 셋째다.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에 따라 북한에 제재를 가해 북한의 ‘정권안보(regime security)’를 위협해 가면서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유엔결의안 1874호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과 한국에 대한 ‘유화 공세’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태도 변화엔 대북 압박에 동참한 중국의 역할이 주효했다.

북한이 미·북 양자대화를 고집하는 것은 중국·미국·일본·러시아·한국 등이 형성한 대북 ‘압박 전선’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와해시키겠다는 것이다. 6자회담의 최대 수혜국인 중국도 이 점에 동의한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역시 “북한에 근본적 변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하고 “북한과 양자 대화할 준비도 돼 있으나 오직 6자회담의 맥락 안에서 6자회담을 촉진하기 위해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일본과 러시아의 의지 또한 견고하다. 결국 북핵 해법은 이들 5자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견고한 공조를 바탕으로 대북 압박을 지속해 북한을 ‘새로운 세계’로 끌어내는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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