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세상보기] 한국에서 각광받는 머피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YS정부 때는 대형사고가 국민을 괴롭히더니 DJP 공동정부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낭패가 국민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런 낭패는 얼마전의 대일 (對日) 어업협상에서, 최근의 2차 정부조직개편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정부조직개편이 왜 낭패냐고?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다가 큰 정부를 만들었으니 그게 낭패가 아니고 무엇인가.

마치 날씬해지겠다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사람이 오히려 뚱뚱해진 것처럼 - . 왜 이런 낭패를 당하게 됐을까. 현재의 17부2처4위원회16청을 14부3처6위원회12청으로 줄이는 개편안은 21세기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졸작이기 때문이란다.

공무원의 반발을 사면 내년의 16대 총선을 치르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닐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머피학 (學) 때문일 것이다.

기구개편안을 마련한 뒤 정부는 흔히 '머피의 법칙' 으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머피 2세를 초청, 자문을 구했다.

그의 조언대로 개편안을 고치다보니 이 모양이 됐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는 자문을 어떻게 했길래 이 꼴을 만들어 놓았는가.

그 내용을 일부 탐문해봤다.

우선 머피는 위원회의 노작 (勞作) 이란 것부터 인정하길 거부했다.

"위원회란 1명 몫의 일을 하는 12명을 지칭한다" 는 것이 그의 제1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법칙에 따라 그는 위원회가 내놓은 두꺼운 보고서의 실효성을 기본부터 의심했다.

그리고는 개편안을 모두 종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능률향상을 위해 재편된 관료조직은 재편전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는 게 그의 제2법칙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편안이 파천황 (破天荒) 적으로 부처를 통폐합해 4개 부서를 줄인다면 종전과 너무 구별이 되고, 그러면 제2법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그는 관청과 정치권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관청은 부처마다 독자적 특성과 전문성이 있는 만큼 현행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내각제를 고려하면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균형있게 나눠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제3법칙이 탄생했다.

그것은 "관청의 시책이 해결하지 못할 경우엔 관청의 시책에 맞도록 문제를 수정해야 한다" 는 것. 머피가 판단컨대 정부조직개편은 관청으로선 정말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그렇다면 문제를 쉽게 수정할 수밖에 더 있는가.

머피는 계속 정부의 설명을 들었다.

"부서 통폐합 대신 8천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기능을 재조정하면 정부조직개편의 실익을 봅니다. " 머피는 이 설명을 용인하면서 그의 유명한 제4법칙을 발표했다.

"악법은 폐지되지 않고 흔히 수정된다. " 이어 공무원의 48%를 감원하고 조직의 25%를 없앤 중국 주룽지 (朱鎔基) 총리의 개혁이 화제에 올랐다.

한국의 공공개혁은 이와 대조적으로 실패했다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자 머피는 제5법칙을 인용했다.

"미국의 개혁운동은 모두 한바탕의 소동으로 끝난다. " 한국의 일을 왜 미국의 예를 들어 설명하느냐고 묻자 머피는 한국도 지금 국제화 물결을 타고 미국화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마지막 우려가 제기됐다.

노사정 고통분담에서 정부는 뼈를 깎는 기구간소화로 보답한다고 해놓고 이제와 발을 빼면 무어라고 변명할 것인가.

머피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에 성공하려면 때로는 자신의 정치원칙을 초월해야 한다" 는 제6법칙이 그 여지란다.

역설의 진리를 추구하는 머피의 법칙이 한국에선 곧이 곧대로 먹혀든다.

혹자는 '철밥통' 공무원의 저항 때문 또는 JP의 과욕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 정권의 개혁의지의 결핍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닐 것이다.

머피학에 대한 열광 때문일 것이다.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