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학자가 본 사법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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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법개혁 문제가 다시 국가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정권도 개혁에 나섰다가 기득권층의 벽만 실감한 채 실패한 난제 중의 난제다.

이번에도 기존 법조인들이 쳐놓은 울타리를 어떻게 허무느냐에 법조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울타리를 허무는 지름길은 우선 법조인 수를 늘려 문턱을 낮추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몇해 전 이코노미스트지에 한국 변호사 시장에 관한 칼럼이 실린 적이 있다.

거기에 첨부된 도표에 의하면 인구 10만명당 변호사수가 미국은 2백50명이 넘고 일본은 1백명 정도인데 한국은 10명도 안되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한국의 개업 변호사 수가 4천명이 못된다고 하니 인구 1만명당 한 명이 안되는 셈이다.

미국에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미국에는 소송이 많다.

이같은 현상은 법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미국인들의 전통에다 변호사가 별 통제없이 공급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인다.

미국의 변호사 시험은 변호사로서 최소한의 자질과 교육을 갖추었는가를 시험하는 진실한 의미의 자격시험이다.

따라서 변호사 수가 많고 질도 천차만별이며 전공이 세분화돼 있어 법률시장도 자유경쟁인 셈이다.

조합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즉 조합원 소득을 가장 많이 올릴 수 있는 조합은 그 조합원의 수를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조합이다.

즉 조합원 수를 제한함으로써 독점지대 (獨占地代) 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우리 법조계는 지금까지 지극히 선별적이고 자의적인 시험을 통해 조합원 수를 철저히 통제해 왔다.

요즘은 많이 늘어나 합격자가 한해 7백명이라고 하지만 합격률은 아직 응시자의 3%밖에 안된다.

지난해 국감 자료를 보면 국세청에 신고한 변호사 연평균 소득이 2억5천만원이라고 하니 실제 소득을 생각하면 사시 (司試) 합격자 통제도 독점지대 창출 면에서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사법시험은 일단 합격만 되면 위세있고 존경받는 판.검사나 변호사로서 사회적 지위와 높은 소득이 보장되니 그 작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재들이 도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력배분의 관점에서 볼 때 법과대학에 필요 이상으로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렸던 것이 사실이고, 더구나 이중 많은 이들이 오랜 도전 끝에 결국은 실망을 안고 다른 길로 들어섰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인력의 낭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판.검사나 변호사는 국민의 법적 권리를 다루는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수재 중의 수재에게만 자격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동차는 인명이 관계되는 중요한 도구이므로 안전한 벤츠나 볼보만 운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소비자 복지를 위해 소형차 운행을 허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변호사도 결격사유가 없는 한 일정 수준의 자질과 훈련을 갖춘 사람에게는 그 자격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법조인의 공급통제는 조합원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독점적 직능조합의 횡포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도 낙방한 수험생 입장에서는 직업선택권이라는 국민기본권을 한 이해집단에 의해 유린돼 온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 법률 시장에서 변호사 공급이 태부족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민주화를 위한 걸림돌 중의 하나라고 봐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국민들의 권리의식 증진과 분쟁해결 방식의 변화를 생각하면 이웃간의 작은 분쟁을 다루는 변호사로부터 수억달러 짜리 국제 계약을 다루는 고도로 전문화된 변호사까지 모든 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상당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 틀림없다.

법률 시장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완전고용이나 소득유지가 아니라 변호사 수가 늘고 경쟁이 심해지면 국민들이 보다 나은 법률 서비스를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많은 경우에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불과 몇천명밖에 되지 않는 기존 변호사들의 복지를 위해 4천만명의 복지가 희생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 법조계는 하루 빨리 권위주의적 폐쇄성에서 탈피해 사법시험의 성격을 진정한 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변호사 공급을 대폭 늘림으로써 법률 시장에도 자유경쟁 원칙이 도입되도록 해야 한다.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늘어나면 제품은 다양화 (전문화) 되고 가격은 내려간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자격이 있다면 합격자수가 몇이 되든 간에 마땅히 합격되는 것이 자격시험이고 이것은 국민의 기본권 중의 하나다.

교통체증이 심해졌다고 운전면허시험 합격자수를 통제해서야 되겠는가.

이단 경제학박사.전IMF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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