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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 가신 LA …‘For Sale’ 간판 눈에 띄게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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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추락하던 미국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이다 최근 발표된 7월 주택착공 건수는 5개월 연속 늘었고, 신규주택판매 건수도 지난해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노스캐롤라니아 클레이턴의 한 주택단지에 ‘집이 팔렸음’을 알리는 푯말이 꽂혀 있다. [블룸버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30마일(48㎞) 정도 떨어진 발렌시아 지역.

이곳은 최근 수개월 새 주택 판매를 알리는 ‘For Sale’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올 초만 해도 이 지역 어딜 가더라도 매수자를 기다리는 주택을 볼 수 있었다. 발렌시아는 2000년대 초 개발 붐을 타고 1만 가구가 넘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선 곳. 2004년부터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2006년까지 2년 새 집값이 두 배로 급등했다. 하지만 2007년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후 올 초까지 집값이 고점 대비 50% 이상 급락하는 등 몸살을 앓았다.

바닥을 모르고 꺼지던 이 지역 부동산 시장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 것은 올 봄. 당시 40만 달러 이하의 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매기가 살아나면서 매물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지금은 매물건수가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시세보다 낮게 나온 주택에는 어김없이 매수자들이 몰리고 있다. 아메리카 부동산의 허대영 부사장은 “여름 들어 50만 달러 이상 주택을 찾는 이가 늘더니 이제는 매물이 모자랄 정도로 중가 주택의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시 롱아일랜드 패초그 지역.

1960년대 콜로니얼 양식으로 지은 한 저택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견디지 못하고 주인이 떠나자 폐가로 변했다. 마당은 자연산 대마초가 우거지고, 뒷마당은 이웃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이웃 주민 얀니라 아마야(52)는 “앞집이 흉가로 변해 동네 집값을 떨어뜨린다”며 “은행이든 정부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

하지만 뉴욕시 당국은 역부족이다. 은행에 가압류되면서 폐가로 변한 집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롱아일랜드뿐 아니라 뉴헤븐·욘커스에 이르기까지 빈집이 즐비하다. 차압 전문 부동산업체인 리얼티트랙은 올해 미국 내에서 주택 차압이 300만 건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어 차압이 당분간 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모기지은행연합(MBA)에 따르면 2분기 전국 모기지 연체율은 9.2%에 이른다. 온라인 부동산업체인 e블루오션 대표 데이비드 홍은 “결국 차압이 부동산 시장 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다행히 주택가격이 조금씩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차압 사태가 예상보다는 덜 악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저지주 리지필드 지역.

이 지역 대우빌딩은 2007년부터 비어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주인이 된 캠코가 2003년 미국 투자회사에 팔았으나 임대가 나가지 않아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아예 문의조차 끊겼다. 대우 측은 빌딩 위에 설치된 대우 간판이라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건물주는 철거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맨해튼 아르테스 부동산의 수지 변은 “현재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급매를 제외하고 거래가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에 미국 금융회사가 빌려준 돈은 1분기 말 기준 3조4800만 달러로 주거용 모기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금융위기를 불렀던 ‘판도라의 상자’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부동산 시장은 회복 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침체가 여전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복잡한 상황이다. 실제로 LA 인근처럼 일부 회복된 곳이 나타나고 있지만, 뉴욕처럼 침체가 계속되는 곳도 적지 않다.

일단 지표상으로는 회복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20개 도시의 주택가격 지표인 S&P/케이스-실러 지수는 이미 5월에 34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주택시장 회복을 장담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주택시장보다 회복 속도가 더딘 상가·사무실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도 걱정거리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경제학) 교수는 ‘미국 집값 하락이 멈춰야 세계 경제가 산다’는 제하의 최근 칼럼에서 “집값 하락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일부 지표가 나왔지만 이는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미국 정부의 부양책에 힘입은 바 크다”며 “집값 상승이 계속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LA지사=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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