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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치’에 눈뜬 MB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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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기업인은 현실을 빨리 받아들인다. 상황이 바뀌면 생각을 바꾸고, 방식도 바꾼다. 기업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빠르다. 이번 개각도 대통령이 변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변심 혹은 변화에 놀라는 모양이지만 나는 대통령의 변화에 더 놀란다. 물론 정작 놀라야 할 대상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는 자신의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당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은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무력화시켰다. 사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봤다면 이런 상황은 예견할 수 있었다. 그는 군 출신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갖고 있던 ‘물리적 기반’이 없다. 민주화운동 출신인 김영삼·김대중이 갖고 있던 ‘역사적 기반’도 없다. 또 노무현이 갖고 있던 ‘도덕적 기반’도 없고,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근혜·정동영·이회창이 갖고 있는 ‘지역적 기반’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적’ 외에는 권위를 담보할 기반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약한 기반이 역설적으로 그의 기반(?)이 되고 있다. 편하게 기댈 곳이 없는 그로서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성과를 내놓아야만 한다. 그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처럼 실적으로 대중적 기반을 만들고 싶어 한다. 비효율적인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국민들을 상대로 ‘진정성’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여의도와 거리를 두면 둘수록 여의도의 현실적 힘을 실감했다. 미디어법이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강력한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여의도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다. 녹색성장, 행정체제 개편, 개헌, 정치개혁, 4대 강 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여의도의 도움 없이는 추진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정무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특임장관과 정무특보를 새로 임명했다. 이것은 경제나 정책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자신감의 방증일 수도 있다. 어쨌든 최근 청와대는 중도, 실용, 서민, 통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확실히 ‘법치’에서 ‘정치’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분명한 목표를 향해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에게 지지율 회복을 위한 전략적 목표는 두 가지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고, 지난 대선 때처럼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보수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흔들렸던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원칙적 대응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요구대로 의원들을 입각시킴으로써 이 정권이 한나라당 정권임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유럽에 특사로 보내고 최경환 의원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하는 등 화해 모드로 접어들었다. 집권 후 이탈했던 중도층의 지지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친서민 정책 입안, 통합을 위한 지역적 인사 안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수용, 정운찬 총리 내정 등의 다소 파격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감 있게 통합을 위한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고 본다. 지지율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정운찬 총리 기용의 성공 여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총리를 맡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가 순항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실적을 남길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