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73.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제8장 도둑

"임자 아까 나보고 형님이라 했제?" "나보다 손위라면 초면이라도 깍듯이 형님이라 부르는 게 장돌뱅이들 의리 아닙니까. " "그려. 나가 나이는 동상보다 쪼까 많치라. 그렇게 되면, 나가 광양장 왔다가 다른 사람이 훌쩍하게 키워 놓은 동상 하나 보게 됐당게?" "아우로 대접해 주신다니, 그런 다행이 없네요. "

"동상. 헤찰 말고 (한눈 팔지 말고) 나하고 바지락 장사 한번 신명나게 해볼랑가?" 도대체 주저가 없는 고막장수 사내에게 태호는 화들짝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직은 장터 물리를 살펴보는 단계에 불과해요. " "내 태자리가 고흥 여자만 출신이라 했지라? 나가 거그서 나고 거그서 이 나이 되도록 커부렀어. 대처로 나가 본 경험이 있다면, 군대 가서 삼년 복무하고 돌아온 것뿐이지라. 군대에 가선 강원도 양구에서 쌔빠지게 고상하고 돌아 왔당게. 서울 몇 행배한 일은 있지만 거그서 살긴 사납던디.

고흥반도라고 말 들어 봤쟈? 살기 좋은 곳이여. 삼월 초순이면, 벌써 마늘과 보리가 다 자라서 온 들판이 눈이 시리도록 시퍼래. 거짓말인가 고흥 한번 와 보랑게. 이맘때면 길가에 잡초가 무성하지라. 고흥 들머리길 안내간판에는 어서 오십시오. 고흥은 편안한 고장입니다.

그렇게 써부렀어. 전국 어느 고을치고 그런 간판 자신있게 써놓은 것 봤어? 못 봤지라? 지도를 보면 고흥이 겨우 섬을 모면한 빈촌으로 보이겠지만,가 보면 안 그렇당게. 빤뜻하고 널찍한 논밭두렁이 질펀해.

내가 팔고 있는 고막은 내 고향 남양만 여자만에서 채취한 신선한 고막이랑게. 고창군에 있는 곰소만 갯벌에서 캔 고막도 있다지만, 소문난 것은 여자만에서 캔 고막이랑게.

그라고 득량만에서 잡히는 우럭도 맛좋기로 유명하제. 거그서 나는 키조개 구경 못해봤지라? 거짓말 하낫도 안 보태도 정말 키만하지라. 동일면 내나로도에서 캐는 굴하고, 남양만 고역 갯벌에서 캐는 굴맛은 둘이서 요구를 하다가 지갑을 돌라가도 (훔쳐가도) 모른당게. 진석화젓이라고 말 들어 봤어? 못 들어 봤지라?

벌교 고막에 고흥 석화란 말도 못 들어 봤어? 원래는 고흥 석화가 유명하지만, 고흥 고막도 괄시 못하지라. 그라고 외나로도 하고 득량만 위쪽 대서면 바다에는 새우가 지천이랑게. 거금도에서 나는 김하고 녹동바다에서 나는 김 미역도 소문났지라. 내나로도 위쪽에선 바지락도 줍지라. 꽃게하며 삼치 피문어도 잡히지만 그 뿐인가.

과역면의 마늘, 노화면과 풍양면의 유자는 어떻고. 고흥유자라고 말 들어 봤지라? 여그선 수입것 (수입품) 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지라.

낚시꾼들이 몰고오는 자가용에 간혹 수입것이 보이더랑게. 곳곳에 갯바위 낚시터가 널려 있어서 일년 내내 진날이나 갠날이나 전국에서 모여든 낚시꾼들로 녹동포구에 있는 낚싯배는 밤 새워 들락거리제. 이런 데서 며칠만 살아 봐도 대처로 나가기가 시납지라. 춥고 배고픈 데를 왜들 싸질러 나가쌓는지 소갈머리를 알 수가 없당게. 동상도 쪼까 살아 보랑게.

내 말이 거짓말인가. 거짓말이거든 내 귀때기를 겁나게 쌔렀뿌러. 우수경칩 다 지났다지만, 아직 쌀쌀해서 변소간에 앉아 있으면 알궁뎅이가 어름짱에 주질러앉은 것처럼 시린디, 길가에 잡초가 무성한 고장이 우리나라에 어디 있으면 말해 보랑게. 나가 이래 봬도 거그서 살어.

낚시꾼들 등쌀에 시달림은 쪼까 받고 있지만, 거그를 떠나기는 싫어. 바지락 줍고 고막 캐는디 허리가 칠성판을 댄 듯이 뻣뻣하고 인대가 늘어나서 걸어가는지 기어가는지 모르고 고상시럽게 살어가지만, 고흥땅 떠나기가 왜 이토록 싫은지 나도 알 수 없당게. 나도 팔자는 역마살을 끼고 내질린 게 분명한디.

장날에 고막 팔러 나와도 싸게 팔고 집으로 가고 싶어서 안달이여. 그래서 그런 생각 나지 말라고 식솔들을 몽땅 데불고 나와도 또 금방 돌아가고 싶당게. 유행가에도 그런 가사가 있던디.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