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위기 1년 세상을 바꿨다] “경기 회복 땐 직원 다시 부를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어느 영화 광고처럼 뛰는 놈 위에 질긴 놈 있다 했나. 금융위기의 충격에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계속 버티며 기회의 불씨를 살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탄탄한 제조기술로 무장한 일본의 중소기업이다.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150㎞가량 떨어진 도치기(栃木)현 오타와라(大田原)시. 17세기부터 바쿠후(幕府)에 일본도를 납품하던 제조공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지금도 유서 깊은 금속가공 업체들이 즐비하다. 창업 400년을 자랑하는 야마가타야(山形屋)는 이 지역 최고의 기업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지난달 22일 찾은 이 회사 공장은 평일인데도 한산했다. 종업원들은 그다지 바빠 보이지 않았다.

가토 도시카쓰(加藤利勝·63) 사장은 “지난해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일감이 절반 이하로 줄어 어쩔 수 없이 직원의 절반쯤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직전 130명에 달했던 종업원은 1년 새 70명으로 줄었다. 그는 “당장 일감이 줄어들고 앞으로도 회복이 어렵다는 사정을 얘기하자 상당수가 상황을 이해해주면서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금속을 달군 뒤 쇠망치로 두들겨서 탄성을 높이는 금속 단조에 강하다. 과거 일본도를 만들었던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규격의 단조 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한다. 가토 사장은 “대기업은 설계와 조립을 맡고, 중소기업은 부품을 공급하는 게 일본 제조업의 구조”라며 “수요 감소로 대기업이 생산을 줄이자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쉬는 공장이 늘어나면서 일본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올 들어 계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1분기 -8.5%에 이어 2분기에도 -4.3%를 기록했다.

“그저 곰처럼 겨울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자구책을 마련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가토 사장이 중점을 둔 것은 틈새상품이다. 대기업만 바라보며 일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직접 완제품을 만들어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친환경에다 연료 값이 덜 드는 환경보일러가 대표적인 자체 신상품이다. 값싼 심야 전력을 사용하는 온돌난방도 내놨다. 그는 “이런 불황은 처음이지만 자체 상품 개발로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경기가 회복돼 주력 제품인 단조 기계부품 수요가 늘면 내보냈던 종업원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는 16세 때부터 일한 83세의 고령 숙련공이 아직 일하고 있다”며 “직원 개개인의 경우 기술만 있으면 어떤 불황이 와도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타와라(도치기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