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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바람직한 과기행정체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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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년전 국민의 정부 출범시 정권인수위원회에서 과학기술부의 존폐문제가 바로 지금처럼 검토됐다.

과기부의 기초연구기능이 교육부로, 산업기술개발기능은 산자부로 통합되는 과기부 해체안이 검토되다가 과학기술계의 강한 반발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 거의 유사한 개편시안이 또다시 검토되고 있고 많은 과학기술 관련 단체들이 반대 모임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왜 이같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든 시안이 과학기술인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안 작성에 과학기술자가 한 사람이라도 참여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한 선진국의 과학기술행정기구나 정책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안 작성에 참여했다면 과학기술계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다.

또한 현재의 시안으로 개편됐을 때 과학기술계가 활성화되고 비효율성이 다소나마 극복될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다면 과학기술계가 따라갈 수도 있다.

선진국의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살펴보자. 독일은 최근까지만 해도 연구기술부로 있다가 교육을 흡수해 교육.과학.연구.기술부 (일명 미래부) 로 조직개편을 했다.

정부의 모든 연구비는 이 부를 통해 지출되므로 연구개발분야에서 부처 이기주의가 나타날 수 없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같이 교육부.과기청.통상산업부 등 연구비가 각 부에 분산돼 있으나 그 업무가 분명히 구별돼 있어 연구비 집행에 중복이나 부처간 갈등이 없다.

미국은 백악관내에 강력한 과학기술정책실이 있고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것과 같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과학기술부에 해당하는 에너지부가 있고 여기에 크고 작은 국가연구소가 30여개 속해 있다.

이같이 나라마다 독특한 과학기술 행정조직이 있으나 연구비를 지출하는데 있어 행정부내에 갈등이 없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부처의 통합이 주로 연구비의 중복투자 때문이라면 이를 조정하는 것이 낫지 굳이 부처를 통합해 과학기술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옳은 방안이 아니다.

과기부는 국가의 전략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기초연구를 증진시켜 과학기술 기반을 튼튼히 한다는 분명한 역할이 있다.

튼튼한 과학기술기반이 있어야 산업기술이 꽃필 수 있으며 나라의 산업경쟁력이 생긴다.

한편 산업자원부는 산업기술, 즉 상품화 연구에 중점을 두어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한다든가, 나아가 벤처창업을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등 과학기술부와 중복되지 않는 분야에서 연구비를 지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두 부처가 경쟁하지 말고 보완적인 관계에서 연구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부에 과기부의 기초연구기능을 통합하는 것은 대학의 연구지원에서 오는 중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기부 산하에는 과학재단이 있어 교수의 연구비를, 교육부에는 학술진흥재단이 또한 교수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두 기관의 업무는 중복이 많아 언젠가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과학재단 (NSF) 이나 독일의 연구재단 (DFG) 이 대학의 과학기술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보아 과학재단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런 의미에서 교육부의 교수 연구비 지원기능을 오히려 과기부로 이전하는 것이 타당하다.

앞으로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운영되면 독일이나 미국과 같이 대학을 비롯한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고, 나머지 기능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밖에 부처별로 지원되는 국가연구비의 종합조정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통해 중복투자에 의한 연구비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사무국이 종합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과거의 과학기술장관회의와 같이 종합은 가능하나 조정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각 부처의 연구개발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을 청와대내에 두는 게 바람직하며, 이것이 다름아닌 과학기술특보의 신설이라 하겠다.

지금 과학기술계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와 최근 과학기술 수상자 초청모임에서 "연구원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 고 말한 것이 언제 이루어질지 학수고대하고 있다.

과기부 해체는 과학기술자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시간을 두고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김은영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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