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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세상보기] 사랑에 빠진 노미네이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작을 노미네이트라고 한다.

노미네이티드 (nominated) , 또는 노미니 (nominee) 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지 어쩐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노미네이트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노미네이트에 관한 화제가 풍성하다.

어떤 작품은 13개 부문에 올랐고 어떤 것은 7개 부문에 올라 있다고 자랑한다.

22일 시상식에서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지금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98년 한해의 영화수익이 62억달러에 이르고 세계 영화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이것을 시샘 (?) 하는 유럽에선 '어렵고 느리고 깊이 있는 것 대신 쉽고 빠르고 단순한 것의 승리일 뿐' 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바로 이같은 할리우드 정신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거기서 취할 점도 많을 것이다.

최근 공전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한국영화 '쉬리' 는 남북 대치의 긴박한 우리 현실에 할리우드식 제작기법을 접목시킨 것이 히트했다.

'쉬리' 의 성공에 힘입어 한국 영화도 블록버스터 (고투자 고수익의 초대작) 의 가능성이 있다고 야단들이다.

철저한 사전 기획력이 주효한 '쉬리' 의 성공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인데도 누구나 쉽게 성공할 것처럼 흥분한다.

할리우드에 도전장을 낼 아시아 영화로는 일본도, 인도도 아니고 바로 한국영화가 노미네이트됐다고 요란을 떠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영화는 지금 '사랑에 빠진 노미네이트'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를 추종하기 전에 잠깐! 그들의 태작 (作) 을 경계하고 우리의 처지를 반성하는 기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먼저 할리우드 영화의 정체 - .솔직히 말해 1년에 수백편씩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의 절반은 쓰레기다.

그리고 절반의 절반은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영화다.

피비린내 나는 폭력영화, 악덕을 찬양하는 괴기영화, 섹스가 전부인 에로영화 등등이 그들이 애써 만든 작품들이다.

마지막 절반만이, 그러니까 전체의 4분의 1만이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다.

이건 영화관에 자주 가거나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거나 케이블TV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된 소감이다.

영화광이라고 해서 볼만한 영화의 비율을 50%쯤으로 올리지 마라. 그런 관대함은 돈 손해, 시간 손해일 뿐이다.

다음 한국 영화인들의 반성의 집회 광경 - .먼저 조명 (照明) 은 컴컴한 영화를 만들어 죄송하다고 말한다.

각본은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게 써내려간 점을 사과한다.

촬영은 답답한 화면을 찍은 점이 미안하단다.

배우들은 울며 고백한다.

TV라는 조그만 상자에 갇혀 돈벌이에만 매달려 왔는데 이제는 필생의 (아니 10년래의) 명연기에 도전하겠다고. 그러나 총중 (叢中)에는 '냅둬유, 이렇게 살다 죽을래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자 감독은 한혼양재 (韓魂洋才) 의 정신을 살리지 못한 점을 용서하라고 한다.

일본의 구로자와, 중국의 장이모 (張藝謨) 는 제각기 일본과 중국의 정서를 작품 가득 담았지만 그 수법은 바로 할리우드 수법이다.

물량투입 이전에 창의력을 본받은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

대중은 어느때 예술에 돈을 지불하는가.

그것은 예술에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될때 만이다.

언젠가 호주 시드니 시민을 상대로 한 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예술가들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국가적 성취로 인한 자부심을 부여한다' 는 데 조사대상자의 94.8%가 찬성했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자신의 나라를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는 데 84.6%,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생활을 응시하도록 만든다' 는 데는 80.6%가 찬성했다.

종합예술이라는 영화, 특히 한국영화에는 이런 공공의 이익이 있나?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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