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당엔 있고 미국 식당엔 없는 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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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08면

오늘 BBC ‘무경계5’(경계를 허문 과학서 5선)의 초대손님은 미국 미시간대의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교수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생각의 지도』를 통해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문화 차이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21세기 다윈의 서재<14>-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다윈=니스벳 선생, 반갑습니다. 차 한잔 하시면서 얘기합시다. 커피, 얼그레이, 홍차, 재스민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뭘로 하시겠습니까?

니스벳=아무거나 주십시오.

다윈=네? ‘아무거나’라고요? 그런 것은 없는데….

니스벳=하하! 선생님은 역시 서양인이시군요.

다윈=그건 또 무슨 말이오?

니스벳=제 제자이며 동료이기도 한 한국 서울대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 아무거나 달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개인의 독립적 선택을 강조하는 서양 문화권에서는 상상이 안 되는 광경이죠.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한국인의 심리를 활용해 어떤 식당에는 메뉴 중에 아예 ‘아무거나’라는 것도 있다는군요.

다윈=정말 흥미롭네요. 나도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생각의 차이를 종종 느끼곤 했지만, 그런 차이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선생의 책 이전에는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첫 장을 넘길 때까지만 해도 좀 불편했어요. 잘 아시겠지만 나는 문화적 차이보다는 문화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사람 아닙니까. 인간의 인지 과정이 동서양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는 선생의 결론이 여전히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니스벳=글쎄요. 제가 선생님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선생님의 보편성 논의를 전제한 상태에서 시작해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그리고 문명의 역사 속에서 모든 인간에게 장착된 인지 특성들, 대표적으로 언어 습득력 같은 것들은 문화와 상관없는 보편적 메커니즘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만으로 인간의 사고 구조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윈=일단 좋습니다. 구체적인 실험 결과를 갖고 얘기해 볼까요.

니스벳=네. 미국과 중국 아이들에게 소, 닭, 풀을 보여주고 이 중 2개를 하나로 묶어보라고 해봤어요. 그랬더니 중국 아이는 주로 소와 풀을, 미국 아이는 소와 닭을 묶더군요. 중국 아이는 소가 풀을 먹는다는 관계적 이유 때문에, 미국 아이는 소와 닭이 동식물 분류상 같은 동물에 해당된다는 범주적 이유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겁니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인의 사고방식은 물속 장면을 보여준 애니메이션 실험에서도 확인됐어요. 일본 학생은 물고기보다는 물속 배경을, 미국 학생은 물고기 자체를 더 잘 기억했죠. 동양인은 주변 환경에 기초해 개별 사물을 기억하는 관계적 사고를 하는 반면, 서양인은 배경과 개별 사물을 분리해 생각합니다.

다윈=전체론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의 차이로군요. 아주 새로운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니스벳=한 20년 전쯤에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중국계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불만을 품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한 충격적 사건이 있었어요. 미국인은 이 범죄의 원인을 그 학생의 사악한 본성 탓으로 돌렸지만 중국인들은 그 학생의 주변 관계, 총기 구입이 쉬웠던 상황들을 언급하며 ‘상황론’을 들고 나왔지요.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맥락을 훨씬 더 중시합니다.

다윈=그러고 보니 동양인은 문화적으로 모두 ‘공자’의 후예들이랄 수 있겠네요. 유교는 개인의 개성보다 공동체 속의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이죠. 그런 전통이 요즘처럼 문화들이 서로 융합되는 사회에서도 인간의 사고 과정 속에서 여전히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니스벳=의학 전통도 문화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허리가 삐끗해서 동양의 침술을 경험해 본 서양인이라면 다 느꼈을 거예요. 서양 의학은 병든 ‘부분’을 고치거나 도려내는 수술을 먼저 떠올리는 반면, 동양 의학은 몸의 전체 균형을 되찾아 질병을 치유하려 하죠. 부분과 전체, 개인과 집단, 분석과 관계, 본성과 상황, 추상성과 실용성 등은 서양과 동양의 사고방식을 구분하는 키워드입니다.

다윈=솔직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석이긴 합니다만 뭐랄까, 문화 간 생각의 차이를 입증한 이 연구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처럼 들리지 않아요. 예컨대 선생의 연구 결과가 맞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도 가능하잖아요. 분석력과 개성적 사고에 상대적으로 능한 서양인들이 경쟁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 더 적합하다, 적어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과학계에서는 동양인들이 불리하다, 뭐 이런 결론 말입니다. 이건 좀 위험한데요….

니스벳=다른 건 다른 거죠. 하지만 서양인이 추상적 사고와 분석 능력에 상대적으로 뛰어나 과학적 탐구에 유리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동양인이 능한 실용적 사고와 관계적 사고로는 사회적 갈등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동서양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거나 한쪽으로(서양 자본주의 문화) 흡수통합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융합되는 흐름이죠. 서양인이 점점 더 동양의 문화를 찾고, 동양인이 서양의 경쟁적이고 개성적인 지배문화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요?

다윈=이제야 독자들이 이 책을 ‘무경계5’로 뽑아줬는지 알겠어요. 동서양의 경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탐구를 통해 인간 사고 과정을 좀 더 명확히 보여줬다는 뜻이겠네요. 독자들이 저보다 더 현명합니다. 고맙습니다. 차 더 하시겠어요?(More tea?)

니스벳=중국에서는 이 상황에서 ‘Drink more’라 말하죠. 서양은 범주를 타나내는 명사를, 동양은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를 더 빨리 배우고 강조한답니다. 하하.

※다음 번에는 ‘무경계5’의 마지막 시간으로 존 브록만이 편집한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를 소개합니다.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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