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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골로 간 ‘도시 먹물’의 엉뚱함 넘치는 농부 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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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굿바이, 스바루
덕 파인 지음, 김선형 옮김
사계절, 252쪽, 1만2000원

웃기는 환경운동 책이다. 여기서 ‘웃긴다’는 것은 하찮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우스운, 그러니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다가는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눈총을 받을 위험이 있을 정도로 웃음을 자아낸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15년 간 기자생활을 한 뉴욕 토박이다. 세계의 분쟁지역과 오지를 취재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맥도널드 햄버거와 월마트에 더 익숙한 인물이다.

그가 2005년 7월 뉴멕시코로 혼자 이주한다. (우리로 치면 지리산 언저리의 촌구석쯤 되겠다) 16만 평방미터의 목장에서 녹색 삶과 ‘로컬 라이프’를 영위하기 위해서다. “지속할 수 없는 삶에, 바로 내가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석유와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석탄에, 욕망에 근거한 연애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기특한 생각에서다.

그런데 이게 간단치 않다. 녹색 삶은 환경친화적 생활을, 로컬 라이프는 거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식품만 섭취하는 생활을 뜻하니 기술문명의 혜택 중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자급자족을 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먹물’은 농사나 축산 경험이 없다. 목장일에 필요한 손재주 역시 마찬가지다.(어릴 적 레고 조립도 제대로 못했단다) 그러니 염소를 들이고, 폐식용유로 가는 개조트럭을 몰고, 전기 대신 쓸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하는 등 친환경 삶으로 가는 길에 시행착오, 좌충우돌을 거듭할 수밖에.

여기서 지은이의 입심이 빛난다. 유머의 핵심 요소인 엉뚱함과 천연덕스러움이 구절구절 배어있다. 태양열 전지판을 다느라 강풍이 몰아치는 지상 9미터 높이의 발판 위에서 곡예를 한다. 그렇게 해서 지하수를 뽑아 올리지만 물탱크를 보니 “식단에 철분이 모자랄 일은 없을 정도”로 녹이 슬었다. 지은이는 한 술 더 뜬다. “마치 치매 대량생산 공장 같다”나. 이마저도 물탱크 근처에서 방울뱀을 만나는 바람에 가죽바지에 오토바이 헬멧, 겨울용 장화를 신고 수위 확인에 나서기에 이른다.

이건 약과다. 태양열 온수기를 설치하느라 금속을 다루다 보니 살인사건에 연루된 듯 손이 피투성이가 된다. 고생 고생해서 배수관 공사를 마치지만 침실의 1000달러 짜리 새 매트리스 위로 초봄의 300리터들이 소나기가 분수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리는 봉변을 당한다.

책 제목이 된 ‘스바루’ 이야기는 더 걸작이다. 스바루는 일제 SUV다. 30만 킬로미터 넘게 지은이와 동행한 ‘애마’다. 그런데 이를 버린다.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소비해서다. 그리고는 2001년형 포드 트럭을 산다. 휘발유 대신 폐식용유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개조를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우선 기술자의 설명을 통 알아듣지 못해 몽롱해진다. 대시보드에 구멍을 뚫어 놓은 걸 보고 지은이는 “치명상으로 뇌신경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를 연상한다. 대수술 끝에 트럭은 폐식용유를 먹고 달릴 수 있게 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패스트푸드 점이나 중국음식점에서 버리는 기름을 쓰기에 지은이의 친환경 트럭은 깐풍기 냄새가 나는 배기가스를 뿜는 ‘간식기계’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연료보급선을 제대로 청소하지 않으면 가다가 서서는 “중국 음식 냄새가 나는 짙고 하얀, 배트맨 차 같은 연기”를 내는 바람에 인근 마을 사람들이 허기를 느끼게 만들곤 한다.

이러니 염소나 닭 키우기, 텃밭 가꾸기가 순조로울 리 없다. 헛간에서 닭이 알을 낳은 소리를 들으며 “안에서 서로 잡아 죽이고 있는 건지, 그냥 알을 분출하고 있는 건지 아리송해 하기”도 하고 ‘딕 체니’라 이름 붙인 코요테가 닭을 잡아먹은 현장을 보고는 “집어삼키기에 급급해 깃털 뭉치만 남아 있는 걸 보면 테이블 매너가 없는 모양”이라 개탄하기도 한다. 염소의 배설물을 텃밭 비료로 퍼붓고는 한 이야기도 만만찮다. “엄청나게 비옥한 토양이 됐다고 하긴 힘들고, 똥으로 뒤덮인 사막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나.

그렇다고 이 책이 시트콤처럼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펑키 뷰티 목장을 일 년 경영한 뒤 녹색 삶을 산다는 것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문제가 아니라 날마다 선택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퇴보, 부상 그리고 비약적 발전이 거듭하는 어떤 과정이라 일러준다. 그러면서 얽히고 설킨 세상에서 지구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친환경적인 삶을 영유하는 일을 다음 세대가 숙고하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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