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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시간관리와 삶의 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교통대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핑계가 있다.

공식 모임이나 약속 시간에 늦게 되면 으레 '그 놈의 길이 막혀서' 라고 얼버무리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 교통체증에 그 원인이 있기보다는 그 사람의 생활습관일 경우가 더 많다.

수년 전 호주 뉴 사우스 웰즈 하원을 방문했을 때 존 머레이 의장의 친절한 안내로 의회건물이며 회의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때 직접 들은 얘기. "회의가 시작되기 5분전 버저가 울리면 의원들은 앞을 다퉈 입장해야 한다.

5분이 지나고 회의가 시작되면 문이 닫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 출석이 불량하거나 불필요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회의를 방해하면 즉석에서 퇴출처분을 받게 된다" 는 머레이 의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국회 생각이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캘린더' (The History of Calendar) 의 저자 데이비드 유잉 덩컨은 "인간은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고 지킬 수도 있으며, 저축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상실할 수도 있고 갈망할 수도 있다" 고 했다.

시간을 재는 시계는 공식상 12시간이 지나면 떠났던 원점으로 바늘이 되돌아오지만 그러나 달과 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떠나간 시간은 되돌아오는 회귀성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천만금보다 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마치 천덕꾸러기 취급하는가 하면 "쇠털같이 많은 날" 이라느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경영하는 서점에 한 사나이가 들어와 점원에게 책값을 물었다.

"이 책 얼마입니까?" "2달러입니다. " "얼마나 깎아줄 수 있습니까?" "저희 서점은 정찰제입니다. " 그 때 프랭클린이 외출에서 돌아왔다.

"프랭클린씨, 반갑습니다. 이 책을 조금 싸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2달러 50센트에 드리겠습니다. " "점원은 2달러라고 했는데 2달러 50센트라니요. " "조금 전엔 2달러였습니다만, 지금은 2달러 50센트입니다. " "농담이시겠죠. 얼마에 주시겠습니까?" "3달러에 드리겠습니다. "

"아니 갈수록 올라가는 책값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하기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책값을 더 받아야 합니다. " 주인의 뜻을 알아차린 사나이가 3달러를 내놓자 프랭클린은 "제 뜻을 알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정가대로 드리겠습니다" 하며 1달러를 돌려주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잘못이고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도 잘못이다.

성공한 기업가치고 늦잠자는 사람 없고, 성공한 학자치고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 없다.

대학 강의가 끝나면 도서관과 일터로 가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즐비한 유흥가로 흩어지는 젊은이들도 있다.

전세계 어느 대학촌도 우리네처럼 유흥가로 에워싸인 곳은 없다.

환락가를 무색케 하는 대학촌의 밤풍경은 말문이 막히게 한다.

술마시고 떠들고 어느 세월에 인생을 다듬고 미래사회를 준비하는가 라고 묻고 싶다.

우리가 말하는 삶의 질이란 외형적 조건으로 형성되거나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삶을 엮어나가는 주인공의 인격과 삶의 수준이 어우러질 때 형성된다.

다시 말하면 잘 먹고 잘 사는 표피적 사건만으로 삶의 질을 품평하는 것은 대단한 잘못이다.

미국 20대 대통령 가필드에게는 수학 콤플렉스가 있었다.

늘 자기보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한 채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날 밤 친구 방의 불이 자기 방보다 10분 더 늦게 꺼지는 것을 보고 그날 이후 가필드는 친구 방보다 10분 더 늦게 등불을 끄기로 하고 그 시간에 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 10분이 그의 열등감을 해결하고 앞서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불꺼진 도서관, 불꺼진 공장, 불꺼진 교회가 많은 나라, 그리고 양심과 정의의 불이 꺼진 사회는 희망이 없다.

우린 모두 시계를 차고 다닌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지키지 않고 낭비한다.

부스러기 시간이 모이면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이면 역사가 된다.

먹고 마시고 놀고 노닥거리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많은 사람이라면 성공은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JS 밀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했다.

경제지표만으로 선진국을 가늠하는 것은 후진적 발상이다.

이유는 억만장자라도 저질이 있을 수 있고,가난해도 질 높은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 울고, 오늘 일하면 내일 웃게 된다' 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세월을 아끼라는 성서의 가르침이 크게 떠오른다.

박종순 충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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