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슬람 지도자 역사적 만남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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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슬람과 가톨릭 문명이 서로 만났다.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11일 교황청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찾아갔다.

이슬람권 지도자와 가톨릭 교황의 대좌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적' 이라는 표현이 이런 경우보다 더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을까. 양대 종교는 11세기 말부터 2백년간 계속된 십자군전쟁 이후 상호 증오로 점철돼 왔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양측은 서로 자신들의 신자가 10억명이라고 밝히고 있다.밀레니엄의 만남이고 10억과 10억의 만남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물론 하타미가 교황과 동격은 아니다.

이란에 별도의 종교 및 헌법상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버티고 있는 데다 이슬람세계에서도 소수파인 시아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슬람국가인 이란의 대통령이며 그 자신이 최고위급 이슬람 성직자다.

교황을 상대할 최소한의 대표성은 갖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특히 이란의 고위성직자 54명으로 구성된 전국 이슬람지도자 회의도 하타미의 교황예방을 추인했다.

그래서 예수와 마호메트 제자 사이의 장엄한 악수라 해도 손색이 없다.

하타미는 자신의 서방나들이에서 "문명과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화해" 를 제창하고 있다.

오래 전을 돌아볼 필요도 없이 하타미가 촉구하는 '문명간의 화해' 는 중요하다.

양대세력의 충돌은 당장의 현안이다.

시각을 좁혀서 이란만 봐도 이는 시급한 과제다.

양측간 감정의 골은 매우 깊다.

이란에서 서방은 79년 호메이니의 혁명 후 다국적 석유기업을 포함해 대부분 쫓겨났다.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은 1년 이상 시위대에게 점거당했다.

아직도 이란의 보수강경파 종교지도자들은 미국을 '악마의 나라' 라며 지하드 (聖戰) 를 촉구하고 있다.

서방으로서는 이란을 '폐쇄적이고 과격한' 나라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슬람이 보는 서방은 '억압과 착취자' 였다.

이란의 입장에서도 서방은 혁명 이전 독재정치를 펴던 팔레비 왕조의 후견인이었다.

서방은 수시로 이슬람체제의 전복을 노리고 틈만 있으면 정치적.경제적 예속을 시도하는, 즉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파괴하려 드는 물질세계의 앞잡이로 여기고 있다.

하타미의 호소는 이같은 상호불신과 오해를 씻어내자는 이슬람의 가톨릭에 대한 제의인 셈이다.

교황은 물론 이같은 제의를 수용할 수 있는 적임자다.

교황은 78년 선출 이래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그래서 하타미와 교황의 만남은 중요하다.

깊은 불신의 시대를 마감하는 첫발이다.

이란의 대서방 개방정책을 상징하는 이벤트일 뿐 아니라 이슬람세계와 가톨릭세계에 주는 화해의 메시지다.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종교분쟁의 관련자들에게 자신의 주변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인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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