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2. 변형윤 스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스쿨은 무슨 스쿨?" 기자가 변형윤 (邊衡尹.72) 서울대 명예교수를 서초동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찾았을 때 그는 '변형윤스쿨'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짧게 깎은 흰 머리에서 엿보이는 강직함. 그러면서도 마음씨 좋은 이웃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간미. "스쿨이라기엔 아직 이르지 않느냐" 는 그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제자들을 그의 곁에 머무르게 하는 유인력의 비결을 감지케 한다.

60년대 제자들의 한자 이름과 학번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邊교수는 서울대 교수로서는 60년 이례적으로 법정에 출두, "제자들이 공산주의로 몰린다면 그들을 가르친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며 학생운동의 순수성을 증언한 바 있다.

서울대 상대학장 시절엔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교문을 두 팔로 막고 학생들의 가두진출을 막았는데, 학생들이 "교수님이 이러시면 어떻게 하느냐" 고 하자 "나는 이처럼 너희들을 막고, 너희들은 나를 밀치고 나가는 것이 역사의 운명이다" 라고 말한 일화가 아직도 제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법정에까지 나서서 학생운동에 동조했다는 '혐의' 로 邊교수는 80년 전두환정권 출범과 함께 서울대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사회 현장에서의 경제학 연구는 오히려 학문의 뼈대에 넉넉한 살집을 올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해직된 그를 위해 제자 한 사람이 사재를 털어 82년 광화문에 스승의 아호를 따 '학현연구실' 을 마련해드렸다.

말하자면 '변형윤스쿨' 의 출발이다.

학현 (學峴)에는 '배움은 고개를 넘듯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라는 그의 신념이 담겨 있다.

邊교수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현실과 밀접한 경제학에 천착하고 있는 것은 학현연구실 출범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경제의 대안 마련이라는 대의를 놓고 모인 이들의 화두는 균형발전론이었다.

성장 일변도의 한국경제에 효율보다는 형평, 성장보다는 분배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학현연구실은 정일용 (鄭一溶.52.한국외국어대).강철규 (姜哲圭.55.서울시립대).이근식 (李根植.53.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차례로 운영위원장을 맡았으며, 이경의 (李敬儀.62) 숙명여대교수와 김세원 (金世源.61).박우희 (朴宇熙.65).안병직 (安秉直.64) 서울대교수, 그리고 한국방송대 권광식 (權光植.60)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경제의 발전적 대안 모색을 위해 고도성장의 허와 실을 규명하고 한국기업 구조의 개혁안을 내놓았다.

학현연구실 멤버들은 87년 한국사회경제학회를 창립하며 학술활동을 보다 심화시킨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을 번역한 바 있는 김수행 (金秀行.58) 서울대교수를 비롯, 정치경제학 성향을 갖는 학자들이 그 주역이었다.

한국사회경제학회에는 한국자본주의 발달사를 주로 연구한 강원대 이병천 (李炳天.48) 교수, 현재 노사정위 실무위원인 윤진호 (尹辰浩.47) 인하대 교수,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와 참여연대 정책위 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김대환 (金大煥.51) 인하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의 연구 성과나 저서들은 이후 시민운동에 경제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84년 서울대에 복직된 邊교수는 92년 정년퇴임하고 이어 93년에 학현연구실을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며 확대개편했다.

이와 함께 학현연구실 출신의 근대경제학 계열을 전공한 경제학자들은 94년 한국경제발전학회를 창립한다.

정일용 교수는 "두 학회는 공부한 배경과 방법론에서 약간의 차이를 가질 뿐 한국경제의 정의 실현이라는 대의에선 일치한다" 며 "주요 회원들은 서로 겹치기도 한다" 고 설명한다.

그는 "邊교수가 국내에서는 경제학을 처음으로 현대적으로 체계화한 분이고 보니, 성향의 차이를 불문하고 선생님 주변에 모이는 것" 이라고 말한다.

경제발전학회는 사회경제학회와 달리 혁명을 통한 위기 극복의 방법론보다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올바른 개혁을 주창, 한국경제의 건전한 개혁 방법론을 모색했다.

당시 충남대 교수였던 전철환 (全哲煥.62) 한국은행 총재와 인하대 장세진 (張世珍.51) 교수 등이 참여했다.

邊교수의 제자 그룹 가운데 또하나의 흐름으로는 최근 급부상, 세간의 주목을 받는 중경회가 있다.

'중경 (中經)' 은 '김대중경제학' 에서 따온 이름이다.

92년 국민회의 김원길 (金元吉.57) 정책위 의장이 산파역을 맡고 이선 (李) 산업연구원장이 회장을 맡은 중경회는 창립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 개발에 주력했으며, 김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새 정부의 요직에 다수 기용됐다.

이들은 대체로 합리적 시장경제론자들로 청와대 전 경제수석.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김태동 (金泰東.53) 씨, 이진순 (李鎭淳.50) 한국개발연구원장, 전철환 (全哲煥.62) 한국은행 총재, 숙명여대 교수를 지낸 윤원배 (尹源培.54) 금융감독위 부위원장, 장현준 (張鉉俊.48)에너지경제연구원장 등이 활동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당선 이전에 참석한 바 있는 중경회에 대해 邊교수는 "지식인은 위기의 시대에 권력에 대해 견제와 자문역할을 해야 한다" 며 그 활동을 일면 긍정하면서도 "지식인이 더 이상의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며 선을 긋는다.

현재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대표공동위원장을 맡아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는 "나 역시 제2건국위에서의 자문 역할 이상을 요구하면 단호히 거절할 것" 이라고 말한다.

한국경제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이론과 정책 제시에 앞장서고 있는 변형윤스쿨. '경제학을 통한 정의의 실현' 이라는 대의 아래 작은 학풍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로 만나고 있는 이들은 경실련.민교협.참여연대등 한국 시민운동에서도 뚜렷한 공헌을 쌓아가고 있다.

고규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