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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손배소송 주도 에바 모제스 코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지난 19일 AP 등 외신들은 독일의 유명 제약회사인 바이엘사를 상대로 미국의 연방법원에 제기된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일제히 기사를 타전했다.

이 소송을 주도한 이는 65세의 에바 모제스 코르 (여) .나치 실험에 이용된 3천명의 쌍둥이 중 살아남은 2백여명의 하나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주의 포르츠라는 작은 마을에서 에바와 그의 쌍둥이 여동생 미리암의 어린 시절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 마을의 유일한 유대인이긴 했지만 큰 농장을 운영하며 어려움을 모르던 그의 가정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곧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에바의 아버지는 이스라엘로 이민을 가고 싶어했지만 네 자녀를 데리고 움직인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낀 어머니의 반대로 주저하던 중 트란실바니아주는 헝가리 영토가 됐다.

1944년 에바의 가족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곳에서 에바 자매는 다른 쌍둥이들과 함께 후에 '죽음의 천사' 로 불린 요제프 멩겔레 박사의 생체실험실에 보내졌다.

일란성 쌍둥이란 최적의 조건을 가진 인간 모르모트였다.

쌍둥이 중 한명이 세균.화학물질.바이러스 등의 주입실험을 당하는 동안 다른 한명은 비교용으로 남겨졌다.

만약 실험용 쌍둥이가 실험 도중 사망할 경우 비교용이었던 다른 쌍둥이도 '비교부검' 을 위해 심장주사를 맞고 죽음을 당했다.

동생 미리암은 실험용으로 신장 (腎臟)에 뭔지 모를 주사를 끝없이 맞았고 에바는 비교용으로 관찰대상이 됐다.

바이엘사가 이 실험을 약품 효능 입증에 이용했다는 것이 에바의 주장. 가까스로 죽음은 면했지만 전후 에바 자매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라곤 숙모뿐이었다.

1950년 이스라엘로 건너간 뒤 미리암은 간호사가 돼 그곳에 정착했고 에바는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약제사인 에바의 남편 역시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미국에 정착, 관광차 이스라엘에 들렀다가 에바를 만난 것이었다.

에바는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동생 미리암은 실험후유증으로 신장이 어른크기로 자라지 않아 끊임없는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을 떨치지 못한 자매는 85년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은 1백12명의 쌍둥이들을 모아 멩겔레 수색작업을 시작했고 '아우슈비츠로부터의 메아리' 란 자서전도 펴냈다.

하지만 멩겔레는 79년 브라질에서 이미 사망한 뒤였다.

질병에 시달리던 미리암은 93년 이스라엘에서 암으로 숨졌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틈틈이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알리는 강연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에바가 이번 소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LA 타임스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미 죽은 가족을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들은 54년 전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는 인간을 실험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증오와 편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싶다" 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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